▲ 박서운 논설위원 울산과학대 명예교수 © 울산광역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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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원룸이 가득히 들어선 사람하나 없는 후미진 골목길을 걸을 때,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모자챙 밑으로 쏘아보는 행인을 보고 왠지 모를 공포심을 느끼면서 부지런히 골목길을 빠져나온 일이 있다. 사회증오 범죄나 묻지마 범죄가 하도 많이 일어나다 보니 스스로 보호본능에서 나온 행동인 것 같다.
경제적 풍요와 자유가 일상이 된 우리사회의 이면에서는 폭력 범죄가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개인들 간에 일어나는 단순함을 넘어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더욱이 이런 문제가 빈곤 또는 결손가정의 자녀에게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통념을 넘어 오히려 빈곤하지 않은 `정상적` 가정 출신자가 상당히 많은 양상도 보이고 있다 한다. "여자들은 다른 남자에게 애정, 키스, 사랑을 줬지만 내게는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이 말은 2014년 `캘리포니아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범행 전 유튜브에 남긴 말이다. 이성에 대한 증오가 엄청난 반(反)사회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최근에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살해한 후, 취재진에게 욕설과 발길질을 하며, "더 죽이지 못해 한"이라고 말한 살인범을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날게 될지도 모른다. 연쇄 살인마 등장, 청소년 강력범죄, 가정파괴 존속 살인,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폭력 및 살인 행각 등의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가 심각성을 이해하고 정부가 대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때로 보인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은둔형 외톨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상통하는 은둔형 외톨이는 핵가족화와 인터넷 보급 등 사회 구조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나홀로 문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사회 부적응, 가정 붕괴, 부모의 폭행, 왕따, 인터넷 게임 중독 등의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빈번히 발견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를 왕따로 자청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데 쓴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이들은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공격적 폭력성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사례가 보고된 것은 2000년이며, 현재는 그 수가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의 전형적 생활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 `혼자 놀기`, `시체 놀이`와 같은 말인데, 섬뜩하기도 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예표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은둔형 외톨이가 중대한 사회적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생활 자체를 거부하는 고립ㆍ은둔형 2030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고 소외되어 우리 사회의 벼랑 한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집을 나와 외톨이로 아버지에게 부엌칼을 들이댄 아들의 말을 들어보자. "중학교 때 정말 힘들었어요. 미래나 꿈같은 걸 다 지워버리고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죠.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어요. 중략 두 분이 엄청 싸우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려요. 부모님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혼하셨어요." 가정불화가 자녀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고, 은둔생활로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고립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자신감을 갖고 사회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고 자녀에 대해 책임을 지는 부모역할이 한층 더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나저나 정치는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청소년들이 현실에 대해 환멸을 가지게 하는데 열심이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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