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운 논설위원 울산과학대 명예교수 © 울산광역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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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심겨진 팽나무를 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잎은 다 떨어져 가지만 남아 있지만 의연함이 돋보이는 자태다. 느티나무나 회화나무 또는 은행나무 같은 노거수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위엄과 품위가 더해져 바라만 보아도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은 가히 `레전드` 홍수사태이다. 레전드란 본래 전설 또는 전설적인 인물을 의미하는데, 요즈음은 어느 분야에서 전설적인 기록이나 혹은 결과를 남긴 사람을 총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주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많이 붙이며 현역으로 뛰고 있을 경우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0대에 이미 레전드란 호칭이 붙는 현역선수들이 많으며, 가수 등의 연예계에서 많이 쓰기도 한다. 오늘 내가 본 그 노거수는 분명히 `레전드`라 할 만 하다. 오랜 세월 어려움을 다 이기고 저런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지고 있음은 그 나무에게 범상치 않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니 그래서 레전드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비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우리 정치에서는 레전드라 불릴 만한 인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에 이르면 레전드는커녕 퇴임 후 영어의 몸이 되는 것이 일상이니, 어찌 한탄을 금치 못하겠는가? 우리 정치 현실이 어찌 이리도 척박한지, 정치풍토는 왜 이다지도 궁벽한지 자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의 야망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도덕적 목적의식이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넓혀 주겠다는 포부가 있어야 한다. 야망보다 도덕적 용기와 신념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대선 후보들 중에는 개인의 정치적 욕망에 휩싸여 `나라와 국민`이라는 큰 산을 보지 못하고 마치 불을 안고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불 지르는 것 같은 후보를 보기도 한다. 카리스마는 대통령이 가져야 하는 자질이기는 하나 필수사항은 아니다. 사람들은 쾌도난마식 일처리 방식에 열광을 하지만 이것이 노거수의 자양분이 되기는 힘들다. 비료로 치면 한 가지 성분만 강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늦더라도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때에야 복합비료가 되어 나무에 균형 잡힌 영양분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존경받는 큰 인물은 노거수처럼 곁을 내주기를 좋아하고 넉넉한 품을 가져야 한다. 권력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품는 대통령.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해 보자. 미국의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듣는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부자나 정치적 싸움꾼,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화술가, 위선의 글쟁이들은 결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니스트처럼 진실 되고 겸손한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은 대통령선거에서 무엇을 보고 투표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경력과 능력을 보거나 출신지역이나 출신학교 그리고 출마한 정당 등이 일차적 선택지가 되기 쉽지만 후보자의 비전이 담긴 공약을 꼼꼼히 따져 선택하는 유권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살펴야 한다. 과오로 얼룩진 사람이 과거의 자기 잘못을 상황논리라는 궤변으로 변명하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후대에 레전드(전설)라 불릴만한 대통령을 뽑아야겠는데 그런 후보가 선뜻 눈에 띄지 않아 걱정이긴 하지만,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는 후보도 있음에 다소 안도의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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