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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회> 며느리의 외출
 
하 송 시인   기사입력  2023/09/26 [17:56]
▲ 하 송 시인     © 울산광역매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습니다. 오늘은 며느리 외출을 시켜주기로 한 날입니다. 같은 지역이지만, 남쪽 끝에 사는 우리 집에서 반대쪽에 사는 큰아들 집에 가려면 제법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나마 휴일 이른 아침이라 차량 통행이 적은 편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급해, 운전하는 남편한테 좀 더 빨리 가라며 채근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며느리도 환한 미소로 인사했습니다. 아들 내외한테 빨리 나가라고 해도 우리 먹을 것을 챙기느라 분주합니다. 잘 챙겨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거듭 독촉했습니다. 아들은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며느리는 미안함이 가득 담긴 표정입니다. 어머니 너무 힘드실 텐데 어떡하냐고 걱정이 이어집니다. 손사래를 치며 전혀 힘들지 않고 기쁜 일이라며 가볍게 등을 떠밀어 집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야호!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들 부부를 내보냈으니 아들 집에서 이제부터 내 세상이 된 것입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경쾌한 동요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며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의 모빌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장군처럼 생긴 아기가 모빌을 보며 꼼지락거리며 누워있습니다. 이 아기가 바로 몇 달 동안, 시멘트 사각형 아파트 안에 며느리를 가둬놓은 주인공입니다.

 

 넓고 환한 이마 위로 숯이 적은 머리카락이 잔디 인형처럼 하늘로 치솟아, 여자 아기로는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쁜 며느리 닮은 손녀 출산을 소망했는데, 튼튼하고 씩씩한 아들을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딸을 보며 장군이 되었다 공주가 되었다 한다며 예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며느리가 임신, 출산, 육아로 몇 개월 동안 나들이를 못간 것이 그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기한테 묶여있는 며느리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내가 출근 안 하는 휴일에 온종일 아기를 돌봐줄 테니, 아들하고 둘이 멀리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고 오라고 했습니다. 어느 때가 좋은지 물어봐서 날짜를 정했습니다. 어머님께 죄송해서 안 된다는 며느리를 달래고 달래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아기를 봐주겠으니 놀고 오라고 시어머니가 사정사정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마지못해 며느리는 한 시간 거리인 인근 도시로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좀 더 멀리 가서 밤 10시 넘도록 놀다 오라고 하자, 아들이 행선지를 2시간 거리로 변경했습니다. 흡족하게 그러라고 하고 아기와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아들 내외가 나가자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갑자기 안쓰러워졌습니다. 엄마 아빠가 잠시 외출하고 아기 옆에 없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졌습니다. 품에 안아서 달래며 부모 없는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하고 교대로 점심을 먹느라 국물이 식었는데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렀습니다. 세 시간마다 우유를 먹이라는 아들의 당부를 어기고 세 시간이 채 안 돼서 우유를 먹였습니다. 그나마 10분 동안 아기를 달래다 먹인 것입니다. 배고파서 주먹 쥔 손을 빨다 애처롭게 우는 소리에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며칠 굶은 것처럼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더 먹여도 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20ml를 더 먹였습니다.

 

 품에 안고 몇 번 등을 토닥이자 큰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트림을 했습니다. 아기 보고 싶다고 오후에 달려온 작은아들은 ‘상남자네!’ 하면서 아기를 놀렸습니다. 배가 부르자 누워서 모빌을 보며 혼자 잘 놀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기 둘레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혼자 옹알이를 하며 침을 뱉어내자 작은아들이 손수건으로 침을 닦아주며 침도 귀엽다고 했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아기 기저귀를 한 번 열어보자 대변을 본 상태였습니다. 대변을 보고도 웃으면서 놀고 있는 아기는 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잠이 와서 보챌 때 내가 안아서 재우고, 아기가 일어나니까 작은아들도 안아주고, 남편도 안아주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기를 씻기고, 울면 안아주고, 우유 먹일 시간 되면 우유를 먹이면서 금방 오후 6시가 되었습니다. 큰아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찍 올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밤 10시 넘어서 오라고 거듭 강조해서 말하자, 이미 출발해서 30분 후면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며느리가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기어이 빨리 오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출발했다고 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양념게장을 사서 상큼한 바닷바람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며느리는 고생하셨다며 아기부터 안으려고 했습니다. 사랑스럽기는 한데 눈치 없는 며느리가 걱정입니다. 아기와 빨리 헤어져야 해서 서운한 어머니 마음을 눈치챌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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