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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서북미 문인협회> 언덕 위에 집
 
오문강 시인   기사입력  2024/04/04 [16:33]

▲ 오문강 시인  © 울산광역매일

 그가 처음으로 노래를 했다. ‘언덕 위에 집’ 조용한 목소리로 가늘고 떨리는 듯한 음성으로 노래를 했다.

 

 내 바로 밑의 동생은 나와 년년생이다. 동생은 의과대학을 어려움없이 들어갔다. 노트 한 권과 달랑 책 한 권만 끼고 학교가는 나를 내 동생은 항상 무시했다.

 

 그럴만도 하긴 하다. 난 학과목 엔 관심이 없었고 항상 딴 잡생각에 몰두 할 때가 많았으니까. 공부보다는 그냥 시간을 때우고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었으니 모양만 대학생이다.

 

 동생이 주일에 교회를 같이 가자고 했다. 서울역 근처에 위치한 자그마한 교회인 그 곳엔 장로님들과 집사님 들이 교회를 아주 열심히 섬기고 계셨다. 성가대와 주일학교 선생은 대학생들이 맡아서 했는데 열심히 봉사활동 하는 우리들을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점심을 대접해 주시곤 했다. 가끔은 댁으로 초대를 하여 우리 모두를 손수 만드신 음식으로 풍성하게 먹여주시기도 했던 그 따뜻한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많은 대학생들 틈에서 그는 항상 자기 맡은 일에 말없이 충실하고 근면함이 몸에 베어있었다. 교회가 끝나면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자연스럽게 같은 버스를 타곤 했는데 과묵한 성격에 별로 말이 없었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동생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반에서 항상 수석을 하고 키도 훤칠한 데다 양반 티가 나는 미남이라 여학생들 한테 인기가 대단한데 그는 통 관심을 안보여서 더 인기란다. 내 관심이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성실한 성격과 과묵함이 우리 아버지와 비슷해서 마음이 다가갔다. 일주일에 두번은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반 여학생들 선망의 대상을 내가 차지한 셈이다.

 

 거의 4년동안 연애 끝에 결혼하여 첫 딸을 안고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뉴욕에서 힘들게 마치고 지상천국이라는 캐리포니아로 이사를 왔다. 개업을 하고 얼마있다가 그가 불러주던 꿈의 (언덕 위에 집)을 마련하고 이곳 터주대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사고 하여 재산을 늘리는데 우린 통 관심을 안두고 이곳에만 북박아 살면서 행복했다. 사십년 넘게 살고있는 이 동네는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정들면 고향이고 편안하니 아무 걱정이 없어서 좋다. 

 

 어느날 부터 부엌 마루바닥이 미지근해지기 시작하더니 물이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하여 대 공사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쓴 시다. 

 

 

<떡갈나무 마루>

 

날벼락은 아니었어.

언젠가는 일이 터질 거라 짐작은 했으니까.

부엌 마룻바닥이 군불 땐 것처럼 미지근해지더니

차츰 따뜻해져서 맨발로 서서 일하기는 좋았지.

집도 병나면 열 생기는 거 알면서도 억지로 걱정을 접고

지냈는데 반년이 채 못되어 부엌 바닥에 물이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지.

마루바닥 시멘트 밑에 있는 더운물 파이프가 터져서

새로운 방식으로 파이프를 벽과 천장으로 올려야 한다네.

아래층 마룻바닥을 다 뜯어내고 하여간 큰 공사를 해야하니

집을 한두 달 비워달라고 해서 억지 휴가를 냈지.

며칠 나갔다가 잠시 집에 와 보니 꼭 폭격맞은 것 같았어.

사방 벽과 천장을 벌집처럼 허물고 공사하고 있었지.

별수 없다! 불 난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마음을 달랬어.

억지 휴가를 내 바닷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바다로 나가서 부지런한 물새 들과

맨발로 물길을 걸으며 인내심을 길러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바닷가에 학교가 있다.

농구 골대가 운동장 한가운데 있고 그 끄트머리에

파도에 밀려온 모래알 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어.

어느 땐 주먹만 한 소라가 물 위로 올라와서 일광욕해요.

학교 정문 옆에 대문짝만큼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요.

그 유리창에 아침마다 해가 매달려 보건체조를 합니다.

파도소리가 교실 안을 꽉 채우고 있는 책상에 앉아

국어책을 큰소리로 읽고 있는 학생들 풍경을

꿈에라도 자주 보고 싶어 시를 써야지.

시를 만들어 그 운동장에서 농구공 하고 놀아야지.

아!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놀면 좋겠다.

굿모닝! 환하게 웃으며 미미가 지나간다.

허연 비닐봉지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걸어갔다 온다.

돌아오는 길엔 봉투에 쓰레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매일 바다를 세수시킨다.

파도가 그녀 발목을 씻겨주며 ‘사랑해 미미’

바다로 놀러와서 학교만 멀리서 바라본다.

저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 눈 똑바로 쳐다보고

파도소리 들으며 공부하고 싶다.

도무지 저 교실로 들어갈 수 없어서

텅 빈 운동장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두 달이면 끝낼 수 있다던 공사는 넉 달이나 걸렸다. 

아래층 바닥을 오크나무로 깔았다.

떡갈나무 냄새 맡으며 이 집에서 오래 살고 싶다.

집이 날 기다렸을까?

 


 

 

마산 출생.

숙명여고, 이화여대 졸업.

1986년 『현대문학』 시 등단. 

미주시인상, 미주문학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까치와 모국어』 『거북이와 산다』 『선생님 꽃 속에 드시다』.

현재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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