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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한국문인협회 시카고> 황새 잡으려던 지렁이 (1)
 
정종진 소설가   기사입력  2024/11/06 [16:46]

▲ 정종진 소설가  © 울산광역매일

 젊었고 우매했던 때였다. 당시 1년 먼저 이민 온 H는 벌써 꽤 고급차를 탔고, 차 옆에 서서 신성일처럼 무게 잡을까 신영균처럼 벙긋이 웃을까가 관건이었다. 내가 공부를 해야 되나 돈을 벌어야 되나 결정도 못한 상태였지만, H는 자동차를 먼저 사라고 나를 부추겼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차를 사고, 차를 몰아야 세상을 볼 수 있지?” 

 

 맞는 말 같기도 했다. 그는 그날 쓰는 휘발유만 채워 주면, 자기 차로 나에게 운전을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고 호의를 보였다. 좋은 기회 같았다. 기회 있을 때 운전을 배워두겠다고 결정했다. 필기시험은 합격했다. 토요일마다 두 주만 연습하고, 그 다음 수요일 저녁에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가서 실기시험을 보면 된단다. 수요일은 저녁 9시까지 시험을 칠 수 있으니 일과가 끝난 후,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가 있단다. 

 

 H는 운전 가르쳐 주러 올 때마다 거의 빈 탱크로 오기 때문에, 매번 휘발유를 15불 어치씩 넣어 주어야 했다. 

 

 “어떤 등신은 시험관에게 10불씩 뇌물을 바치면서 운전면허증을 따기도 하는데, 그건 나라망신 시키는 거야. 운전할 줄 알고 따야지, 돈 먹여서 면허증 따면 뭘 할 거야?” 

 “그렇죠. 뇌물 먹여 면허증을 따면 안 되죠.”

 

 간호사인 아내는 저녁 근무를 나가고, 나는 H의 차를 타고,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관은 50세가 넘었을 것 같은 자상한 노인이었다. 

 

 “눈보라가 쳐서 오늘은 문 닫으려던 참이었어. 너까지만 내가 시험 쳐 줄게.” 

 

 온종일 일하고 바짝 얼어서 저녁 늦게 찾아온 젊은이가 딱했던지, 그는 나를 위해 한번만 더 시험관 노릇을 해 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미스터 정, 오늘 기분이 어떠신가? 어유~, 미남이고 인상도 좋으시네.” 

 

 시험관이 친절하게 구니까, 나는 기분이 좋아서 여유 있게 출발했다. 운전 코스를 돌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할 때, 시험관은 화를 벌컥 냈다. 친절하던 분이 별안간 화를 내니, 내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한 것 같다.

 

 “전 영어를 잘 못하는 데요.”

 “그딴 소리 할 필요가 뭐 있니? 너 합격할래, 떨어질래? 돈 츄 원어 패스?”

 “합격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습니까?”

 

 시험관은 미국사람답지 않게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그렇다. 왜? 못 알아듣니? 유 원어 패스 오어 낫?” 

 

 나는 ‘예스’ 와 ‘노’를 헷갈리지 않고 잘 대답하려고,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예스” 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눈까지 오는데, 너를 위해 가외로 일했어. 더러워! 재시험 치러 다시 왓.”

 

 그는 낙서하듯 마구 불합격 사인을 긁어 제치고 차에서 내렸다. 이상했다.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나? 합격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딱지 놓을까? 큰 포부를 안고 이민 왔으며 스스로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인물로 착각했었건만, 나는 미국에서 첫 번째로 치른 시험에 낙방을 했다. 앞으로 닥칠 미국생활의 실패를 예견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H는 시험관에게 걸쭉한 미국 욕을 해대며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다음 수요일에 또 봐. 합격하길 원하느냐고 물으면, 꼬투리를 꽉 잡아. 그게 무슨 뜻인지 너의 상관에게 물어봐야 되겠다고 팍 덤벼들어. 네 상관이 이해하지 못하면, 더 높은 상관에게 쫓아가서라도 끝까지 나는 그 뜻을 밝혀내고 말겠다고 엄포를 놔. 돈 먹으려는 놈들은 버르장머릴 바짝 고쳐 놔야 돼.” 

 

 아내가 병원에서 근무 끝나는 밤 11시까지 나는 쓰라린 아픔으로 줄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아내가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출구로 나왔다. 

 

 “여보, 시험 잘 봤어요?” 

 

 말 안 하는 남편에게 합격했느냐고 묻지 못하고, 아내는 시험 잘 봤느냐고 에둘러서 물었다. 

 

 “눈보라가 심해서 오늘 시험 못 본대. 다음 주 수요일 다시 와야 된대.”

 

 떨어졌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내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아내는 모른 척했다. 

 

 분하고 처절하여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낙방이라는 뚜렷한 현실은 하늘을 뚫던 자존심을 무자비하게 할퀴었다. 가슴속을 칼끝으로 마구 헤집는 것 같았다. 내 무능력에 대한 분노와 시험관을 향한 복수심은 매일 밤 나를 불면의 세계로 밀어붙였다. 

 

 “맹추 짓거리 그만둬. 돈 10불을 안 주면 세상없어도 운전면허증 못 받아 글쎄.” 지인들의 충고가 더욱 짜증스러웠고, 그럴수록 나의 오기가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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