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대입하지 않고도 남녀노소, 성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게 있다. 바로 돈, 권력, 명예 순이다. 법조인의 경우 변호사는 돈이 목적이고, 검사는 권력, 마지막으로 판사는 명예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인격에 따라 이의 순서가 바뀔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과 특활비 논란 정국 한 가운데 서 있는 검사는 일단 찔러보고(구속) `아니면 말고`식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뒤치다꺼리`는 판사들의 몫이 됐다는 것이다. 법원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전 정부 안보 실세를 석방하고 현 정부 고위 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법원과 검찰이 영장 갈등에 휩싸일 조짐이다. 구속적부심(拘束適否審)은 피의자 측 청구에 의해 법원이 피의자의 구속이 과연 합당한지를 다시 판단하는 절차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인신 구속으로 인한 국민의 인권과 권리의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지난주 서울중앙지검 주요 사건 피의자 3명이 검찰의 뜻에 반해 석방되었다. 최근 법원의 석방ㆍ영장 기각 결정이 검찰 수사에 큰 내상을 입힐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 정권 안보 실세`(김관진)라거나 `첫 수사 표적이 된 새 정부 인사`(전병헌)라고 묘사될 정도로 석방된 피의자들의 중량감이 크기 때문이다. 검찰은 까다로워진 법원의 판단에 강한 불만과 함께 수사 차질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근 법원의 행보에 대해 법원이 영장 심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을 예고하는 동시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법원이 불구속수사 원칙을 강조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일부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검찰 수사의 법리적 허점 가능성을 지적한 것도 이번 영장 기각 사태의 함의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김 전 장관의 경우 구속 뒤 다음 수순을 이명박 전 대통령 직접 수사로 보는 관측이 많았다. 이에 김 전 장관 석방 뒤 여당 의원들이 "적폐판사가 다수 판사를 욕되게 한다", "김 전 장관을 석방시킨 신 모(某) 판사는 우병우와 대구ㆍ경북 동향, 같은 대학 연수원 동기"라며 일제히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1심 법원은 구속사건을 6개월 안에 마쳐야 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수뢰 사건을 비롯해 구속 피의자를 상대로 방대한 증거조사와 법리 다툼을 해야 하는 국정농단 재판 대부분이 촉박한 일정에 쫓겨야 했다. 불구속재판은 재판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재판부 재량껏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주 4회 재판 강행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결론이 나오지 않자,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영장 재발부를 주요 이유로 재판을 보이콧해 재판부를 난감하게 만드는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달여 만인 어제(27일) 재개된 본인 재판에 또다시 불출석했다. 지난달 16일 박 전 대통령의 사선 변호인단이 총사임하며 사실상 `재판 보이콧`에 들어간 이후 42일 만이다. 재판부는 28일에도 박 전 대통령이 안 나오면 피고인 없이 궐석재판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법리적 다툼을 이유로 법원이 불구속수사에 방점을 찍는 행보는 검찰 수사를 향한 경고인 동시에 수사가 끝나면 재판을 해야 하는 법원의 고육책이란 평가도 있다. 자아실현이 부족한 찔러보는 검찰과 `뒤치다꺼리`하는 판사 대립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 정부에서 왜 정치와 경제가 불안한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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