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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명함(名銜)의 무게
기사입력  2018/11/13 [15:10]   하송 시인
▲ 하송  시인

처음 사람을 만나서 인사할 때 대부분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명함에는 이름, 직업, 연락처, 전자우편 주소 등이 기입되어있습니다. 바쁜 세상에 간단하고 쉽게 본인을 알리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어서 참으로 효율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때는 여러 명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명함을 받는 바람에 이름과 얼굴이 연결이 잘 안 되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접목해서 눈길을 오래 붙잡아두는 개성이 강한 명함도 간혹 있습니다. 현재 두 종류의 명함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지도교사 협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준거집단과, 임원으로 활동 중인 문학단체에서 받은 명함입니다. 갑자기 안겨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지만 두 명함 모두 적지 않은 시간동안 캄캄한 서랍에서 동면(冬眠) 중입니다.  

 

문학 행사에 참석 할 때 마다 명함을 많이 받게 됩니다. 번번이 빈손으로 다니다가 어느 날 드디어 명함을 챙겨갔습니다. 하지만 역시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결국은 핸드백에서 꺼내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명함이 없어서 죄송하다는 인사말로 대신했습니다. 인근의 소규모 초등학교로 한 달에 한 번씩 순회교육을 하러 갑니다. 6학년은 남자아이만 여덟 명입니다.

 

수업 시작 벨과 함께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손에 작은 종이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명함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건축전문가 김00입니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한 줄로 질서정연하게 서더니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말하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명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자 아이들이 상황설명을 했습니다. 장차 미래에 되고 싶은 자신들의 꿈을 적어서 담임 선생님께서 명함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멋쩍은 미소와 한편으로는 으쓱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꿈을 이룬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 스쳤습니다.  


`판소리 전문가 정00, 축구 전문가 유00, 건축 전문가 김00, 교육 전문가 최00, 요리 전문가 배00, 도움 전문가 임00, 드론 전문가 강00, 태권도 전문가 유00`명함 앞면에는 이렇게 적혀있고 뒷면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장차 전문가로 성장하여 넓은 세상에 나아가서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담임교사의 제자사랑이 세계지도에 촘촘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여덟 명 모두에게 한 명씩 구체적인 격려와 함께 용기를 북돋워 주며 덩달아 뿌듯해졌습니다. 이 아이들이 5학년 때인 작년이었습니다. 남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천방지축 교실에선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된 남자아이들의 개성이 예측할 수 없이 발현되었습니다. 5학년 수업을 들어갈 때는 미리 심호흡을 하고 각오를 다져야 했습니다.


`침착하자!`
`이 아이들은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이야!`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자!`
1년을 무사히 보내고 올해 또 순회학교를 방문했을 때 작년 5학년 담임교사가 안 보였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명예퇴직을 했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교실 수업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학년 초부터 점진적으로 변하더니 학년말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열성적이고 활기찬 수업 분위기에 적응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년하고 왜 이렇게 많이 달라졌는지 의아해 하는 나에게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철이 들었어요" 말썽 부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던 아이 몇 명이 작년 말에 전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말처럼 올해 철이 든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아이들한테 받은 명함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다 아뿔싸! 미처 읽지 못한 명함 상부에 새겨진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바로 이거였구나! 그동안은 `우리`보다 `내`가 먼저였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담임교사의 철학과, 6학년으로 자라면서 철 든 것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 것 같았습니다. 현재 아이들은 담임교사를 중심으로 차곡차곡 알차고 아름다운 꿈의 왕국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 8명이 언제 어디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이루고자 하는 장래 꿈을 꼭 이루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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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보건교육은 물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하송은 대한문예신문신춘문예에 동시로등단했으며,문학저널에 수필, 국보문학과 청산문학에 동시로 신인문학상을 수상을 비롯해서 제1회 지필문학 대상,제6회 한국문학신문 대상,제7회 농촌 문학상,2013년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공모전 당선,제13회 한류예술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금연교육서‘담배와 폐암 그리고 금연’동시집‘내 마음의 별나무(청어출판사)’창작동요집‘맑은 별(인문사아트콤)’‘밝은 별(인문사아트콤)’‘창작동화 모래성(고글출판사)’을 출간하여 어린이들의 정서 순화와 인성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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