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형 논설위원 전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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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간산업이자 세계 비철금속 제련업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려아연이 사모펀드 MBK와 영풍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휘말려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영풍그룹 공동 창립주인 최씨 일가가 경영해 왔으나, 또 다른 창업주인 장씨 일가와 신사업 추진에 대한 견해 차이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상태이다. 현재 장씨 일가가 경영하고 있는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33.13%인데 반해, 최씨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14.6%이다. 영풍은 사모펀드인 MBK와 합작하여 최씨 일가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최씨 일가 측은 영풍과 사모펀드 MBK가 경영권 장악을 위하여 고려아연의 지분을 공개매수하려고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간주하고 공개매수 행위를 저지하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온갖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울산에 주력사업장을 둔 울산의 향토기업으로 중소기업융합울산연합회 등 울산지역 시민ㆍ사회단체들도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사모펀드로 넘어갈 경우 향후 구조조정, 투자 축소, 고용 감소, 울산시 재정수지 악화 등 지역경제에 미칠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 저지를 위한 최씨 일가의 반격에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기업소유지분의 인수합병 중 기존 대주주와 협의 없이 이루어지는 기업지배권 탈취 행태를 말한다. 매도자와 인수자 간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우호적 인수합병과는 달리 매도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적대적 인수합병이다. `증권거래법`의 대량주식취득제한 조항에 의해 사실상 불가능하던 적대적 인수합병이 1997년 4월1일부터 동 조항의 폐지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증시의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하였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우호적 인수합병에 비해 대상기업의 범위가 넓고, 특히 인수가액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되지 않아 사모펀드의 빈번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일반적인 인수합병과는 달리 인수 당하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주요 주주가 매수 시도를 반대할 경우에도 강제로 이루어지는 매수 형태이다. 과거에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 표적이 된 향토기업이 `먹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사례들이 있다. 2017년 맥쿼리그룹 사모펀드는 영남권 최대 폐기물처리업체인 코엔텍을 인수합병한 뒤 3년여 만에 경영권을 매각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2021년에는 국내 수소 1위인 덕양을 인수 합병하여 국내 수소 생태계의 최상단을 점령하였다. 이러한 전례를 기억하고 있는 울산지역 사회단체들은 이번에도 그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의 실질적 주체인 사모펀드 MBK의 과거 인수합병 이후 보인 행태도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중 하나인 홈플러스는 9년 전 MBK로 넘어간 후 직원과 점포가 대폭 줄어들고 실적까지 악화하면서 기업 가치가 떨어지기도 하였다. 140개에 달했던 매장은 지난해 6월 기준 131개로 줄어들었고, 해고된 직원은 3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MBK가 2018년 인수한 치킨 프랜차이즈 BHC는 인수 후 가맹점 계약 부당해지, 물품공급 중단 등 가맹사업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억5천만원과 시정명령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23년 기준 고려아연의 연간 매출액은 9조7천45억원이고, 자산총계는 12조461억원이다. 그리고 1천878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총 18개의 연결대상 종속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만약 이번에 사모펀드가 최대주주가 된다면 사모펀드 특성상 투자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몇 년 후에 회사를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모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해당 기업과 협력회사 임직원들이다. 갑자기 최대주주가 바뀌게 되면 고용안정은 물론, 진행 중인 사업들에 대한 계속 진행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업의 중요 자산 및 핵심 기술의 유출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2년 11월 하이닉스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였던 하이디스가 중국 BOE그룹에 매각되며 대표 기술이었던 광시야각(FCC) 기술을 포함한 4천300여 건의 LCD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무단 유출된 사례도 있다. 누가 경영권을 쥐든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 지분 경쟁의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지나친 지분 확보 경쟁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비용이 향후 고려아연 회사에 반영될 것이고,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도외시한 공개매수 경쟁은 종국적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