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살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또 일을 하며 살았다. 일을 하다가 몇 달을 집에서 쉬며 전업주부 역할을 해보니 24시간이나 되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시간이 짧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하는 강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늦게 일어나서 겨우 집안 청소를 하고는 바쁘게 집을 나와서 모임에 참석하여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오후에 운동 잠깐 하고나면 저녁 시간이 된다. 바깥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하여 집안 정리며 요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드라마도 보고, 홈쇼핑도 보고, 종합편성채널 에서는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얼마나 심도 깊게 파헤쳐 주는지 집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TV는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 건강이나 연예 등 관심이 가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요즘은 종일 TV를 보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의 만물박사가 된다. 시간은 나이의 속도로 간다고 하더니 몇 달이 한일도 없이 훌훌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일을 쉬는 동안 ‘이번 기간 동안은 지극히 자신을 위해 소모하기’로 했었다. 그동안 못하던 일들도 하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건강을 돌보는 스케줄을 마련했지만 늘 시간을 쪼개 쓰던 필자로서는 참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느긋하게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갖다 붙이며 자신을 눌러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쉼표를 찍으며 재충전의 여유를 가진 것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공이 좀은 쌓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본다. 예전에 어떤 고명하신 스님께서 필자에게 하루에 30분 동안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벌써 10년도 지난이야기인데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한 것 같다. 몸을 가만히 두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무슨 상념이 그리 많은지.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아주 큰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주부들의 시간은 고무줄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가 24시간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얼마든지 시간을 늘여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주부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무줄 시간인 것 같다.
각자의 수명이 달라 살아가는 시간은 다르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여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이 빠듯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이는 생업을 영위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쪼개어 남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치기도 할 것이다.
내가 받은 시간의 고무줄을 늘여가며 쓰지 않고 잘 보관하기만 한다면 세월이 지나면서 경화되어 찢어지게 될 것이다. 평소 탄력적으로 잘 사용한다면 유연하고 탄성이 풍부한 튼튼한 고무줄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여 길지 않은 인생을 길고 멋지고 강력하고 탄력 있는 고무줄 시간으로 사용하여 두 배의 보람된 인생을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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