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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낮은 곳에서 만나는 어설픈 현실
 
이영조 중구 보훈안보단체 협의회장   기사입력  2015/05/31 [16:30]
▲이영조 중구 보훈안보단체 협의회장
출근시간 집을 나서면 바로 OO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등교하는데,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남향인 정문 옆 소로(小路)를 건너는 횡단보도에 이어서 왕복4차로를 가로 지르는 횡단보도가 정문에서 우측으로 10m, 좌측으로 1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연결돼 있다. 좌측 횡단보도는 공원 앞인데 공원 옆 정문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에 아이들이 여러 명 걸어 온다. 그런데 15m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4차로로 바로 직진한다. 그것도 남성교통 봉사자가 녹색깃발로 오는 차를 세우고 아이들을 먼저 건네주고 있는 상황에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명백한 무단횡단이다.

문제는 어른이 깃발로 차를 막고 아이들더러 건너가라고 하니 무단횡단을 당연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초등학교시절 당당히 무단횡단을 했으니 성인이 돼서도 습관의 논리상 도로를 횡단할 때 마다 횡단보도를 무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침부터 무단횡단을 가르치는 이 학교가 아주 ‘어설픈 현실’에 속하지 않을 수 없다.

시내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일대는 금연구역인데 정류장 안쪽 의자 앞과 좌우에 담배꽁초, 빈 담뱃갑 등이 널려 있다. 누가 피운 것일까? 버스가 도착해 승차하니 좌석은 학생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버스마다 좌석에 노란커버를 경로석 의자가 2~3개 있고, 임산부를 위한 보라색 좌석도 있다. 노란색은 경노. 장애인석이고 분홍색은 임산부 지정석임을 알 텐데 이런 구분이 무시된 채 학생들이 당당히 앉아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다. 경노. 장애인석이 비어 있으니 앉아 있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경로대상이나 장애인이 타도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필자가 경로 대상인데 노란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처다 보지도 않는다. 내가 50대 정도로 보이는가? 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이군경으로 서 있는 것이 불편한데도 그냥 서서 갈 수밖에 없다.
 
경로 장애인석이라고 표시한 한글을 모를 리  없을 테니 그럼 뜻을 모른단 말인가? 문득 몇 년 전 이웃나라에 갔을 때 버스나 지하철에 어른이 타면 벌떡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워주던 웃음 띤 학생들의 얼굴이 스친다. 아무튼 이 풍경 역시 하루의 어설픈 현실이다. 버스에서 내려 태화루 앞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이쪽이나 건너 쪽이나 10여명 넘는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상태로 기다리는 사람도 몇 명 보인다. 이윽고 녹색신호가 왔다. 일제히 건너는데 자전거는 신호가 오자마자 그대로 속력을 내 사람사이를 헤집고 달려가니 부딪치지 않으려면 사란이 피할 수밖에 없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는 것이 대한민국 법이다. 필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니 신호가 2초 남았다.

태화교 아래로 내려왔다. 성남동 사무실까지 강변 산책로를 걸어갈 요량으로 일단 숨고르기로 의자에 앉았다. 꽤 넓은 태화교 아래에 마침 종량제 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사람이 서너명 보였다. 공공근로를 나온 사람인 것 같았다. 집게로 휴지, 꽁초 등을 줍는데 널려있는 것에 비해 건성건성 줍는다.(김정은 옆에서 건성건성 박수치다가는--) 앉아 있는 내 앞에도 주을 것들이 널려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매서운 눈으로 필자를 힐긋 보더니 그냥 지나갔다.

“ 네가 주워라. 건방진 것 같으니 라고” 이렇게 입속말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 때우기’이고 그래서 ‘염불 보다 잿밥’이란 옛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설픈 현실이다. 강변 산책로를 걷는다. 무룡산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눈부시다. 강변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확연히 구분해 놓았는데도 젊은 남녀가 탄 자전거 4대가 보행자 길인 필자 옆을 속력을 내 지나간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인데 따질 것 없이 무작정 가는 것이 옳다는 어설픈 현실이 눈에 보인다.

 집을 나서서부터 여기까지 필자가 겪은 현실은 울산만이 아니고 전국에서 하루에 이런 낮은 곳에서 만나는 어설픈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별거 아닌데”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현실이 너무나 사회적인 기초 항목이다. 누군가가 눈여겨보고 누군가가 고쳐야 할 현실임에도 고칠 사람이 없다. 이런 어설픈 현실이 있는 지도 모르는 지도자들은 시내버스, 지하철을 타본 일이 없으니 까마득히 모를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국민모두가 누리는 행복도 비례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런 낮은 곳의 현실은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3만불 탑’의 기초 벽돌이 하나씩 빠져 마침내 탑이 허물어져야 마침내 3만불 시대의 허상을 알게 될 것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현실(reality)’의 마지막 구절이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현실로부터 모방할 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매 순간 가는 곳마다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기에 끊임없이 도망치는 우리의 피난길에서 현실은 매 정거장마다 먼저 와서 우리를 맞이 한다’

매일매일 먼저 와서 우리를 맞이하는 이 어설픈 현실을 깨끗하고 정의롭게 수놓아야 할 책무가 당신과 나에게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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