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교무실에 가면 대부분 선생님들의 손에 커피 잔이 쥐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또 다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눕니다.

  그리고 연신 휴대폰을 바라봅니다. 휴대폰을 항상 지참하며 수시로 전화를 받고 문자와 카톡이 왔는지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됩니다. 수업 중이라서 통화를 못하면, 쉬는 시간까지 무슨 내용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또한 잘 모르거나 필요한 정보를 생각날 때 즉시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교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켭니다. 학교의 모든 업무는 컴퓨터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전이 되거나 프로그램이 작동이 안 되면 업무가 마비됩니다. 심지어 수업을 하기도 힘듭니다.

  집에 와서는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켭니다.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서 텔레비전 없이 사는 경우도 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요즘은 순정·명랑 드라마인 수목 드라마에 중독되어서 애타게 수요일과 목요일을 기다리며 지냅니다. 며칠 남지 않은 종영날짜에 미리부터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우연히 예쁜 옷을 보거나,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 물건을 보게 되면 모두 사고 싶습니다. 참느라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루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날마다 중독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독상태로 지내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담배는 피운 적이 없고, 술은 마시지를 못해서 니코틴과 알콜 중독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또한 커피 대신에 차를 마시는 습관 역시 카페인 중독과 거리를 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교육청에서 하는 인문학토크 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는 전라북도 전주에 거주하다가 지금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에서 지리산 시인으로 활동하는 박남준 시인의 ‘일상에서의 시쓰기’였습니다.

  박남준 시인을 처음 뵈었는데, 등산자켓에 목도리를 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은 소탈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지 30년이 되었으며 지인들이 마련해 준 집에서 혼자 지내신다고 했습니다.

  속세를 떠나서 깊은 산 속에서 자연과 시와 벗하며 지내시는 모습에 부러움과 염려가 함께 몰려왔습니다. 직장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은 한 없이 부럽지만, 생활의 불편함 속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부분은 생각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이 살아보고 싶어서 일부러 택한 삶이라는 시인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띵~ 했습니다. 매일 부족한 것 투성이라는 생각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지내는 나는, 그 시인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영유하고 있는지….

  시인의 강의를 들으며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생각나면서, 무더운 날에 맑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 속의 단조롭고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의 풍경에, 강의가 진행될수록 부러움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신간 제목이 ‘중독자’ 여서 의외였습니다. 무엇에 중독될 상황과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중독자’ 를 읽으며 ‘시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혼자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시인을 중독자로 만든 대상이 다름 아닌 발효차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 차의 매력에 빠져서 직접 발효차를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즐겨 마시고 있기에 동지애가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비우며, 발효차와의 중독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독하다 끔찍하다 너에게로 물든 중독
 발효차가 익었다
 우주의 고요 한 점 아침 찻잔에 띄운다
            - 박남준의 ‘중독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