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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멋있게 나이 들기
 
하송 수필가   기사입력  2016/04/05 [18:12]
오랜만에 미장원을 방문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치렁치렁하고 파마가 풀어져서 부시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쁜지, 몇 달을 벼르다가 겨우 시간을 낸 것입니다.
  휴일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손님이 적었습니다. 커트를 하고 있는 남학생 한 명과 대기석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한 분 뿐이었습니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미용사와 인사를 하고 대기 의자에 앉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염색하러 왔는데, 머리에 파마 끼가 남아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직은 곱슬거려 보여서 파마 끼가 많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보청기를 놓고 와서 안 들린다고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씀드리자 알아들으셨습니다. 주름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며 파마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안 해야겠다며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연세를 여쭤보니 87세라고 하셨습니다. 아파트에 혼자 거주하시는데, 옆 동에 사는 결혼한 아들이 오늘도 미장원에 모셔다 드리고 끝나면 또 모시러 온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바쁜 미용사가 화장실 열쇠를 드리며 다녀오시라고 했는데 걱정이 되어서 따라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이 꺼진 채 인기척이 없는 부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움직임이 둔하신 할머니를 부축해서 화장실 안에까지 안내해드리고 기다렸다가 미장원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학생 커트가 끝나자 할머니 순서가 되었습니다. 커트를 한 후에 흰 머리에 염색약을 까맣게 발랐습니다. 그리고 염색이 끝나면 파마를 하겠다며, 아드님이 파마까지 꼭 하시랬다고 했습니다. 파마 값이 비싸서 안 하겠다고 하시는 할머니께, 미용사는 아드님이 주시니까 걱정하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내야지 왜 아들이 내냐고 강하게 말씀하시면서 파마를 수락 하셨습니다. 미장원에 한 번씩 시간 내서 모시고 오려면 힘들어 한다며 아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면서 외국으로 골프 치러다닌다고 미용사가 귀띔을 했습니다.

  드디어 파마할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미장원을 방문한 상황이라, 많이 잘라달라고 했습니다. 미용사는 놀라며 너무 많이 자른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긴 머리를 유지하다가 어깨정도로 자르니 파격적이었던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가위에 싹둑싹둑 잘리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아이고, 아까워라. 이 아까운 머리를…쯧쯧.”

  시원하게 떨어지는 머리카락 뭉치를 보며 상쾌한 기분에 젖다가, 순간 움찔했습니다. 혀까지 끌끌 차며 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겐 거추장스럽기만 한 머리카락인데,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는 소중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파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열처리 파마기계에 연결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크게 웃으셨습니다. 이런 파마를 처음 본다고 재미있어 하시는 할머니의 환한 미소에 적잖이 안심이 되며 함께 웃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중화제를 바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화장실을 또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손님이 밀려와서 바쁘게 일을 하는 미용사가 화장실 열쇠를 드리며 다녀오시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안 놓여서 할머니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조금 전부터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폐 끼칠까봐 참았었다는 말씀에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드디어 파마가 모두 끝나서 돈을 계산하고 나오면서, 아직 파마 중이신 할머니께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잘 가라며 화장실에 두 번이나 데려다 줘서 고맙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멋있게 나이가 들기 위해서는 옷을 잘 입고 유머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수한 옷차림에 귀가 어두워서 의사소통도 어렵지만, 긍정적인 생각으로 잘 웃고 작은 일도 감사하게 생각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야말로, 훈훈하고 멋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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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05 [18:12]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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