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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惡法)과의 투쟁
 
정문재 뉴시스 미래전략부장   기사입력  2016/04/26 [17:48]
▲ 정문재 뉴시스 미래전략부장
법은 투쟁의 결과다. 하지만 때로는 투쟁의 원인이 된다. 시대정신을 외면하거나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반영하지 못하면 투쟁은 필연적이다. 잠재적인 범죄자를 양산하는 법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이런 법을 악법(惡法)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악법과의 투쟁에 동참한다. 악법을 둘러싼 대립관계가 변곡점을 넘어설 때까지 투쟁은 많은 희생과 위험을 요구한다.

미국의 '도주 노예 단속법(Fugitive Slave Law)'도 그랬다. 연방 정부는 1850년 공무원이 남부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를 체포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반 시민들도 도주 노예의 수색 및 체포에 협조해야 했다. 해방 노예인 줄 알고 도와줬지만 도주 노예로 드러나면 '도주 방조'로 처벌했다.

연방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미국은 노예를 허용하는 '노예주'와 노예를 금지하는 '자유주'로 갈라졌다. 양측의 세력은 팽팽했다. 새로운 주가 연방에 가입하려고 할 때마다 북부와 남부는 충돌했다. 미주리가 노예주로서 연방에 가입하려고 할 때 북부는 세력균형을 위해 메인이 자유주로서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세력 균형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에 이어 독일 혁명이 일어난 후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봇물처럼 흘러들어왔다. 캘리포니아의 금광 발견은 이민 봇물을 격류로 만들었다.

백인 노동자들은 흑인 노예와 경쟁했다. 캘리포니아, 오레곤, 뉴멕시코, 유타 등 서부 지역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이 넘쳐흘렀다. 백인 노동자들은 당연히 노예제를 반대했다. 노예제 지지 세력은 소수파로 전락했다. 상원은 주마다 2명의 의원을 뽑았지만 하원은 인구 비례로 의원 숫자를 결정했다.

남부가 반발하자 기상천외한 타협안이 등장했다. 선거권이 없는 노예 인구를 하원 의원 정원에 반영했다. 남부에서는 투표권을 결정할 때 노예 인구의 3/5를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50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린 지주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31표를 행사했다.

흑인 노예의 도주는 남부의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노예들은 북부, 또는 캐나다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남부는 또 다시 '연방 탈퇴' 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협박은 먹혀들었다. 마침내 '도주 노예 단속법'을 얻어냈다.

도주 노예 단속법은 시행되자마자 무력화됐다. 퀘이커(Quaker) 교도를 비롯한 양심적 백인들과 흑인들이 노예 탈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퀘이커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노예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罪)였다.

노예 탈출을 돕기 위해 점조직(點組織)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다. 이 조직은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연결됐다. 노예 사냥꾼이나 지주가 도주 노예를 쫓다가 갑자기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땅으로 꺼진 것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지하철도를 통해 상당수 흑인 노예가 자유를 얻었다. 영웅도 등장했다. 여성 노예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은 지하철도를 통해 13 차례에 걸쳐 70여 명의 노예 탈출을 이끌었다. 그녀는 '모세(Moses)'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흑인 노예의 탈출이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터브먼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여성의 선거권 확보 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20달러 지폐의 표지 인물로 터브먼을 선정했다. 현재 표지 모델인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지폐 뒷면으로 밀려난다. 잭슨은 190여 명의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였다. 잭슨은 또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통해 수 천명의 인디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인류는 악법에 대한 투쟁에 헌사를 바친다. 악법은 자유나 평등 같은 기본적 가치를 훼손한다. 그래서 악법에 대한 투쟁을 아낌없이 격려한다.

법은 사회적 목적의 산물이다. 사회가 변화하면 법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법은 경직적이다. 한 번 도입되면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법이 기득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때도 많다. 약자를 외면한 채 기득권만 보호한다면 나쁜 법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비 필요성이 높은 악법도 많다. 일반인들은 물론 공무원들도 인정할 정도다. 20대 국회가 오는 6월 개원한다. 치열한 악법 정비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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