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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6/09/29 [15:30]
▲ 유서희 수필가    

 

‘○○야 뭐하니? 난 보슬비가 내리는 밤, 혼자서 추억의 편지를 읽다가 울다 웃다 하고 있어.’
구슬프게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모아 두었던 편지를 읽다가 친구에게 문을 두드렸다. 유난히 깊은 마음을 나누었고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안부 물으며 지내고 있다. 편지 봉투를 나란히 하고 편지지를 펼쳐 내용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 주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무척이나 신기하기도 하고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 주어서 고맙다 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추억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랴.
삶이 힘겨울 때, 중학생 때부터 결혼 전까지 모아 두었던 편지들을 꺼내어 읽는다. 편지 속에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던 사랑과 우정, 기쁨과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손글씨로 써서 편지를 쓰는 일이 귀하다. 통신이 발달하면서 전자 우편이나 휴대폰을 통해서 소식을 나누기 때문에 편지를 받아 보는 일은 초대장이나 출판기념식 행사 안내등을 받아 보는 것이 고작이다.


 답장을 생각하며 우체부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레임도 이젠 느껴 볼 수가 없다. 사람냄새가 그리운 요즘 손글씨로 주고 받는 편지가 더욱 그립다.
아버지는 한 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면 군에 간 오빠에게 편지를 쓰게 하셨다. 술김에 장남을 향한 뚝배기같은 당신의 사랑을 용기 내어 불러 주시면 연필로 받아 적었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편지 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 했다.
 동네에서 단짝이던 친구는 외국에 대한 동경이 유난히 컸다.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는 의미로 영문 편지를 써서 병에 넣어 바다에 뛰워 보내기도 했었다. 뜻밖에도 미국에서 답장이 와 그 친구는 한동안 외국인과 국제 펜팔을 했었다.
 졸음이 몰려 오는 수업시간이면 선생님 몰래 꽃편지지를 펼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꼬깃꼬깃 편지지를 접어 두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옆 반으로 달려가 친구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면 다음 수업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바쁘게 환한 얼굴을 하고 친구는 답장을 건네었다. 지금 읽어보면 아주 사소한 말들인데 그 때는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순수했던 소녀 시절이었다. 감성을 달래며 우정을 함께 했던 친구의 마음이 깨알 같이 알알이 적혀 있는 사춘기 시절의 행복이다.


 어떤 과정으로 편지를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학생 동기들이 군대에 가 있을 때 쓴 편지도 제법 있다. 동기 모임에서 그 친구들의 편지 얘기를 하면 어떤 내용을 썼는지 궁금하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여 달라고 한다.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된 그 친구들도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몹시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펜팔을 했던 편지도 여럿 있다. 얼굴도 모른 채 가명의 이름과 주소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루는 언니가 그 편지를 뜯어 보고는 가족이 모두 알게 되어 아버지의 걱정을 듣게 되자 언니와 된통 싸우기도 했었다.
 비 내리는 어느날, 취직 후 첫 미팅을 한 사람과 사귀다가 마땅한 이유 없이 전화 한 통화로 이별을 고했다. 그 뒤 친구를 통해 전해 받았던 그 사람의 애절함이 담긴 편지를 읽을 때면 그렇게 냉정해 질 수 있었던 나 자신에게 놀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이유만이라도 알려 달라는 부탁에도 무 자르듯 잘라 버린 인연에게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젠 세상의 찌든 때 묻어 점점 감정이 메말라가는 나를 돌아 볼 때 느껴지는 그대로의 감정이 그립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오빠의 마지막 편지다. 결혼 후 부모님께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화목한 가정을 꾸려 효도를 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오빠의 성품을 꼭 닮은 뛰어난 필체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마치 오빠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편지를 펼치면 준비 없이 찾아온 청천벽력같은 이별의 아픔이 되살아 가슴이 저려 온다.
편지는 세월의 뒤안길로 점점 잊혀져 가는 나를 싱그러움으로 채워 준다. 언젠가는 고이고이 간직한 편지를 전시 해 놓고 편지 속의 주인공들을 한 자리에 초대해 편지 낭독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꿈을 꾸어본다.
 가을이다. 가슴 한 켠이 구멍이 난 듯 쓸쓸해지는 계절. 휴대폰이나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전하기에 편지만한 것은 없다. 지금, 정성과 마음을 가득 담아 깊이 묻어 두었던 마음을 편지로 표현한다면 이 가을이 더욱 행복 할 것이다. 흑백 사진 같은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오후, 오랜만에 소녀적 감성 같은 꽃 편지지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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