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西周)의 마지막 왕 유왕(幽王)은 나라를 바로 잡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왕후와 아들 의구(宜臼)가 있었지만 포사라는 여자를 총애해 아들을 보았다. 왕후의 자식만 태자가 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유왕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국 왕후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그 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그런데 사랑하는 미인 포사가 좀처럼 웃지 않자 유왕은 포사를 웃기는 자에게 천금(千金)의 상을 준다고 전국에 공표했다. 그러자 간신 괵석부가 봉화를 지펴 제후들을 놀려주면 포사가 웃을 것이라고 제의했다. 당시에는 적들이 침입해 오면 밤에는 봉화대에 불을 지펴 적의 침입을 알리고, 낯에는 연기로 위급함을 알리는 신호로 삼았다.
이처럼 중요한 봉화대를 유왕은 미인 포사를 웃기는 놀이감으로 삼아버렸다. 유왕의 명령으로 봉화대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았다. 제후들은 임금이 위급해졌다고 생각해 급히 군사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장수들이 헐레벌떡 수도에 도착해 보니 유왕과 포사는 성루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적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고 미인 포사는 그제야 깔깔 웃었다. 유왕은 간신 괵석부에게 천금의 상을 내렸다. 이때부터 ‘천금으로 웃음을 산다’는 천금매소(千金買笑)는 말이 생겼다. 이에 재미를 들인 유왕은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번 같은 놀이를 벌였다.
그러다가 정말 견융족이 쳐들어 왔다. 폐위된 황후의 아버지 신후(申侯)가 견융과 합쳐 유왕을 공격한 것이다. 봉화대에 불길이 솟았다. 그러나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결심한 제후들이 하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유왕은 도주하다가 적군에게 잡혀 죽고 미인 포사는 생포되었다. 이처럼 여인 하나 때문에 나라가 기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예쁜 미인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한다. 뒤늦게야 정말 적군이 침략했음을 알고 제후들이 달려 왔으나 유왕이 이미 죽은 뒤였다.
원래 서주시대에는 왕의 군사가 제후의 군사보다 몇 배 더 많았고 제후들은 왕의 명령이 있어야 군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주 왕실이 동주로 옮긴 뒤 소국(小國)들이 수 백 개나 생겨 땅이 작아졌다. 반면 세력이 커진 제후들은 땅을 넓히려고 전쟁을 일삼았다. 그러자 군사를 지휘하는 권력이 제후들의 손에 들어가 사실상 왕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제후들 중에서 가장 힘에 센 제후가 패주(覇主)가 되었는데 이때부터가 춘추 전국시대의 개막이다.
촉(蜀)나라 유비는 제갈량과 같은 충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였다. 그러나 유비와 제갈량이 죽고 유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유선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간신인 환관 황호(黃鎬)의 말만 들으며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답답하여 충신 강유가 이런 표문을 올렸다.
“지금 위나라에서 장군 금희와 등애를 보내 대군을 일으켜 길을 나누어 온다고 하옵니다. 어서 군사를 일으켜야 하옵니다.” 그러자 간신 황호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강유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싶어 올린 표문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 푹 놓으시고 의심하지 마시옵소서.” 결국 유선의 촉나라는 위나라 사마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예나 지금이나 간신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를 알아보는 군주의 눈이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말을 들으면 군주의 혜안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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