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느 행성에서 온 별인지 몰라 하루의 고달픈 작업을 마친 이 밤, 물새처럼 사뿐히 호수에 찾아 들지
물의 굽이를 생각했을까 서늘한 은하를 헤엄쳐 천천(川天)으로 흘러 들어와 고인 별들 어머니 자궁 속에서 보았던 천체도 저처럼 촉촉하고 고요한 어둠 이었어 호수와 천체가 눈금 맞닥트린 곳 애초 물 불 한 몸이었다는 듯 득음했다는 듯 젖은 문구들 좀 봐 성좌를 수식하는 오리 떼들, 고독한 비문을 은밀히 읽어내며 수기로 긋는 천체의 행간 좀 봐 별의 은신처인 밤의 호수 때론 옅은 빛으로 교신하며 행성의 씨받이가 되어주지
물이 물로 될 수 없을 때 물 지느러미는 허공을 꿈꾼다지 빗방울이 흐르지 않는 건 호수의 부피 인지도 몰라 아니 몇 억 광년의 갈증 인지도 몰라 뒤척인 호수의 등짝에 기적이 쌓이고 모든 지상이 허공에 바둥댈 때 삐끗 이 항구에 투신하는 유성들 호수의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초원을 꿈꾸는 유목이거나 우주를 탁본한 거북 등 이거나 무심으로 떠 내려온 내 별 이거나
직장 일을 마치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가끔 선암 수변공원을 들리곤 한다. 수변을 한 바퀴 돌다보면 수면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과 아득한 하늘의 별들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듯 눈부신 풍경을 실감하게 된다. 어쩌면 힘들고 고단한 내가 이 호수를 찾아든 것과 같이 저 하늘의 별들도 이 호수에서 쉬고 싶은가 보다. 고요한 수면위로 오리 떼들이 유성처럼 천체를 가르고 별들의 고향을 흐트리며 지나간다. 이 순간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내 마음은 호수의 사막을 횡단하는 유목민이 되어 둥둥 떠내려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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