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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흔들림
 
정호식 학성고 교사   기사입력  2017/03/28 [18:20]
▲ 정호식 학성고 교사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수만의 잎은 제각기/몸을 엮은 하루를 가누고/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들판의 고통 하나도/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우리는 늘 흔들리고 있음을./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순례11-오규원

 

왜 하필 순례(巡禮)라는 부제를 붙였을까. 순례는 ‘종교의 발생지, 본산(本山)의 소재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함’의 뜻이다. 이 시에서 순례 대상은 종교적 성지가 아니라 들판에서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대단찮은 나무이거나 풀이다. 이런 존재에게서 화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이 순례의 대상이 아닐까.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생명체는 하나의 우주이고 신의 섭리가 발현된 것이 아닐까. 식물의 줄기나 잎이 죽어 있으면, 딱딱하게 마르거나 썩어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은 물기가 있어 생명의 탄력성이 있고 부드럽다. 그래서 흔들린다.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흔들림으로써 제 위치를 잡고, 부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생명과 활동을 유지한다. 수동적으로 흔들린다기보다 바람에 유연하게 반응하여 스스로 몸을 휘게 하였다가 이내 회복하곤 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햇볕이 비쳤다 안 비쳤다 하는 데 따라서 적절하게 몸을 움직이며 적응한다. 이런 기후 변화가 일어나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존하기 어렵다. 살아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바람이 불 때 몸을 가만히 있으면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움직이는 배 위에서, 또는 달리는 차 안에서 몸이 흔들리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으면 몸을 가눌 수 없다. 같이 흔들려야, 움직여야 몸을 가눌 수 있다. 따라서 흔들리는 것은 몸이 다른 외부의 상황들에 반응하는 증거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포가 죽어 늙어갈수록 몸은 덜 움직이며,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쪽으로 변해간다. 신나는 음악을 들어도 몸이 덜 흔들린다. 그러다 죽으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풀이 흔들리고 잎이 흔들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바람에 흔들린다. 사실 대로 말하면 작은 바람은 작은 것을 흔들고 큰 바람은 큰 것까지도 흔든다. 인간사에서 ‘바람’은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운명은 사람을 조금 흔들지만 큰 운명은 크게 흔든다. 바람을 약간 피하거나, 덜 부는 쪽으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안 불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외부적 상황이다. 비선택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외부적 조건, 즉 모든 타자(他者)는 ‘바람’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많이 흔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한 ‘흔들림’은 ‘슬픔’이나 ‘고독’, ‘고통’으로 나타난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은 흔들린다. 그런데 이런 슬픔, 고독, 고통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외부 상황이나 자극에 주체적으로 반응하기를 포기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판에 식물들이 흔들림으로써 튼튼해지듯이, 사람도 슬픔, 고독, 고통을 겪음으로써 튼튼해지고 살아갈 수 있고, 하루하루 몸을 가눌 수 있다.

 

베르그송은 ‘존재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고 그로 인해 온갖 고민과 고통과 슬픔에 빠지곤 하지만 그것이 존재라는 것이다. 더 이상 해결할 문제가 없으면 존재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의 역설이고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초지일관(初志一貫), 부동심(不動心), 명경지수(明鏡止水), 불혹(不惑). 모두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관련이 있는 말들이다. 어찌되었건 ‘흔들림’보다는 ‘흔들리지 않음’을  더 강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고에 길들여져 왔다. 불확실하고 오락가락하며 끊임없이 변하며 우유부단한 것은, 확실하고 중심을 지키며 변함없이 확고한 것에 비해 신뢰가 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래서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다.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이나 일사불란함은 번민과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지식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생각을 죽이는 것일 수 있다. 빈 들의 잡초처럼 흔들림으로써 튼튼한 생각을 얻고, 삶의 나침반이 찾으려면 늘 섬세한 번민으로 떨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한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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