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미 울산 YWCA 성매매 피해 상담소장

상담소의 문이 열린다.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모자를 푹 눌러 쓰거나 혹은 고개를 숙인 채 상담을 받고자 들어온다,  자리에 앉는 순간, 곧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 감당하기 힘들었을 이야기들을 묵묵히 털어놓고는 경계어린 눈빛을 놓지 않는 사람.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사람들. 필자가 거의 매일 상담소에서 만나는 여성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가. 내가 선택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알려지게 될까 두렵다. 이 일을 그만둘 자신이 없다.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결코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담 중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하는 말이다.

성매매 피해자들은 다른 폭력 피해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복합적이고 만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피해의식, 자존감 하락, 자기이해력 부재, 존재감 상실, 무기력증을 나타낸다. 또 작은 좌절에 대한 인내심 부재, 두려움, 도덕적 분열, 정체성 혼란, 우울, 불안, 충동제어의 어려움도 있다. 지속적으로 성매매에 노출될 경우에는 인지기능 장애, 언어기능 및 이해력 기능 장애, 공황, 패닉, 자해, 자살충동 및 시도, 해리, 정신분열, 약물 및 알코올중독, 피해망상, 인격장애 등이 그 특징이다.

열거하기에도 벅찬 이런 증상들은 현장에서 만나는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단지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장애나 겉으로 보이는 피해가 없어 보일뿐이다. 때문에 이러한 피해자들의 특성을 알지 못하면 성판매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쉽다. 전문 훈련을 받은 상담원들조차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데 한계를 느낄 정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요즘  “성매매는 이제 비자발적이라기보다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매매에 있어 비자발적, 자발적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성매매를 강제로 하게 되었든, 원해서 하게 되었든 성매매라는 구조 속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위와 같은 피해 구조 속에 온전히 노출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성판매자들 중 성매매를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은 단 한명도 없다. 단지 여러 가지 환경과 이유로 인해 머물러 있을 뿐이다.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성매매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것 또한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정신과적 치료와 일상생활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 당장의 긴급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그만두었다 할지라도 남아있는 트라우마로 인해 가족, 친구 관계, 결혼생활에 대한 문제, 취업 및 직장 적응에 대한 부분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제 성매매 문제는 ‘누가 나쁘다, 옳다, 아니다’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성에 대한 윤리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공동의 독버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