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들라크루아의 진실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기사입력  2017/03/30 [14:36]
▲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빈센트 반 고흐는 체계적으로 회화를 배우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자신의 화풍을 정립해 나갔다. 흔히 고흐에게 영향을 준 선배 화가로 밀레, 렘브란트, 들라크루아를 꼽는다. 밀레는 자연주의, 렘브란트는 붓질, 들라크루아는 색채로 고흐의 스승 역할을 했다.


유젠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이끈 리더로 평가된다. 주로 신화나 문학에서 작품 소재를 끌어오거나 이국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그림 때문에 들라크루아를 기억하지 않는다.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사건들을 담아낸 그림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시인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는 열정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냉정하게 열정을 표현한 화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키오스섬의 학살'도 그 중 하나다. 19세기 초 오스만투르크는 키오스섬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이 독립을 시도하자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오스만투르크는 섬 주민 9만명 가운데 일부만 남겨놓고 모두 죽여버렸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에서 무표정한 투르크 병사와 죽음 앞에서 넋이 빠진 그리스인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했다. 체념한 표정으로 자신의 처형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 죽은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는 아기 등을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키오스섬의 학살'이 아니라 '회화의 학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상당수 사람들은 들라크루아는 몰라도 한 손에 삼색기(三色旗)를 들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민중을 이끄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기억한다. 그게 바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다.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 정부는 저항의 상징으로 통하는 삼색기 사용을 금지했다.


이 작품의 소재는 1830년에 일어난 '7월 혁명'이다.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입헌정치를 무시했다. 국왕 반대파가 1830년 5월 총선거에서 승리하자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렀다. 반(反)정부 세력이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자 국왕은 그 해 7월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7월 칙령'을 통해 출판 자유의 금지, 의회의 해산, 선거권 제한 등을 발표했다.


파리 시민은 반정부 투쟁을 전개했다. 노동자와 학생은 물론 부르주아까지 가세했다. '몬테크리스토백작'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도 펜을 던진 후 총을 들었다. 시민과 정부군 사이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파리 시민은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승리를 거뒀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들라크루아는 시가전을 목격한 후 붓을 들었다. 그는 형에게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했다. "지금 나는 역사를 그리고 있는 중이야. 나는 비록 함께 싸우지는 못했지만 조국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볼 작정이야." 들라크루아의 대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대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자유를 강조하는 수백 페이지짜리 논문보다도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예술이 진실을 말할 때 진정한 예술이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서둘러 사들인 후 창고에 감춰두었다. 국민들을 선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술에서건 현실에서건 진실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배운다. 하지만 현실에선 '진실'이 그저 목표나 구호로 전락할 때가 많다.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키 어렵다는 것과 별개로 이해관계가 왕왕 진실을 덮어 버린다. 특히 동료나 지지자들을 불편케 하는 진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의 행보는 참신하게 여겨진다. 그는 총리 재임시절에는 원자력 발전 지지자였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원전 반대론자'로 돌아섰다. 폐기물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원자력발전을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논리다. 원전을 고수하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한 목소리를 강조하는 일본의 정서를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관방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서 좋다"며 불쾌감을 표시할 정도다.


어떤 조직이건 한 목소리를 강조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다른 목소리에 대해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지면 그 조직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고이즈미 같은 지도자를 가진 일본이 부럽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7/03/30 [14:36]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