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은 길어지는 반면 퇴직 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평균 퇴직 연령 52.6세, 자녀들의 만혼(晩婚)으로 실질적 은퇴 나이(남성)는 72.9세인데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다. 퇴직후 무료 20년을 힐일 없이 지내야 할 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치의 3배를 초과하는 49.6%(2013년 기준)이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38.6%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금리는 1%대로 떨어지면서, 이제 평범한 직장인이 퇴직금만으로 노후를 살아가기가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절실한 ‘반퇴시대’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원래 조선 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상황일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리고 ‘반퇴(半退)’란 소득을 얻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상당 부분 줄이고 일하지 않는 시간 동안 공부, 여행, 자원봉사, 취미나 여가 생활 등을 하면서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평균 수명에 비해 퇴직이 빠르고 퇴직 후 경제적 이유로 다시 구직 활동을 하게 된 세태를 일컬어, 은퇴해도 쉴 수 없다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퇴시대’는 ‘은퇴해도 못 쉬는 시대’를 말하고, ‘반퇴세대’는 평균 퇴직 연령이 젊어졌으니 제2의 인생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의 신어다.
50대 초반에 퇴직을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20년간 더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노후를 위한 준비라곤 공적연금(국민연금)뿐인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처음 도입했던 1988년 70%에서 40%로 뚝 떨어지자 이제 ‘반퇴푸어’란 신어까지 생겨났다. ‘반퇴푸어(半退poor)’란 퇴직을 하고 나서도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인의 은퇴 준비 2016’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은퇴준비지수는 낙제점이다. 2016년 은퇴준비지수는 56점으로, ‘위험’(0∼50점 미만) ‘주의’(50∼70점 미만) ‘양호’ (70∼100점) 중 간신히 위험을 면한 주의 단계로 나타났다. 또한 10가구 중 3가구(30%)는 은퇴 준비 수준이 ‘위험’에 해당했다.
그리고 이미 은퇴한 이들 중에서도 57%가 은퇴 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유는 생활비 마련과 생계유지(42%)가 가장 컸으며, 삶의 의미와 보람(24%)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퇴직자들이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재취업 중장년의 직무이동 분석 조사’에 따르면 재취업 성공자 10명 중 4명(37.9%)은 전직 업무와 무관한 새 직종에서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환위기 이후 조기퇴직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노후의 소득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는 경제활동기에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세대로, 자녀의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고 부모 부양 부담도 큰 세대인 셈이다.
반퇴시대의 인생이모작은 토끼보다는 거북이형이 바람직해 보인다. ‘황혼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철저한 노후 준비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