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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보고(寶庫)-인문학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기사입력  2017/07/20 [14:30]
▲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두보(杜甫)를 떠올리면 마음은 어느새 짠해진다. 눈물이 울컥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가 남긴 시(詩) 곳곳에 피눈물의 흔적이 완연하다. 백성과 자신에 대한 연민을 애절히 토해냈다. 불행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가슴도 저민다. 천재의 불행은 더욱 그렇다. 두보는 천재였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를 자랑했다.


재능은 안온한 삶을 보장하지 못했다. 과거에 응시했지만 연거푸 낙방했다. 늘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벼슬에 대한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벼슬을 얻기 위해 권문세가에게 아첨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존심마저 꺾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큰 뜻을 실천해보겠다는 꿈은 그를 지탱한 버팀목이었다. 가족이 굶주리자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봉선현(封先縣)의 처가에 맡겼다.

 

얼마 후 그리운 처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봉선현을 찾아가면서'라는 시를 지었다. 그는 "관(棺) 뚜껑이 덮이기 전까지는 이 뜻 한 번 폈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 현종은 피난 길에 올랐다. 두보는 황제를 찾아가다가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후 현종에 이어 황제 자리에 오른 숙종을 찾아갔다. 옷은 다 찢어지고, 신발은 해져 거지나 다름없었다.

 

숙종은 두보의 충심을 높이 샀다. 그에게 간관(諫官) 자리를 제수했다. 처음으로 벼슬다운 벼슬 자리를 얻었다. 출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재상 방관(房琯)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샀다. 방관은 반란군에게 패해 요충지를 내주고 말았다. 방관은 파면됐고, 두보는 좌천됐다. 이 때부터 삶은 더 꼬이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기근이 들자 알량한 벼슬자리도 내던졌다. 도토리를 줍고, 둥굴레 싹을 캐서 근근이 먹고 살았다.

 

두보는 고해(苦海)의 심연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했다. 그는 죽기 2년 전 '강한(江漢)'이라는 시를 남겼다. 두보는 마지막 구절에서 '고래존노마 불필취장도(古來存老馬 不必取長途)'라고 노래했다. "예로부터 늙은 말을 쓰는 것은 꼭 먼 길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네"라는 뜻이다. 두보는 자신을 '늙은 말'에 비유했다. 세상이 자신의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탄이기도 했다. 이 표현은 '노마식도(老馬識途)'라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은 고죽국을 정벌했다. 봄에 원정을 시작했지만 겨울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낯선 곳이라 귀국 도중에 길을 잃고 말았다. 재상 관중(管仲)은 "길을 잃었을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며 늙은 말을 풀어놓았다. 늙은 말은 이내 길을 찾아냈다. 제나라 군사들은 무사히 귀국했다. 늙은 말은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하다. 어려운 고비를 헤쳐갈 지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전에서 늙은 말을 많이 발견한다.

 

숱한 늙은 말들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고전의 숲을 거닐고 있다.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문학은 고전의 보고(寶庫)다. 수천 년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문학은 인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한국 인문학의 처지가 우스꽝스럽다. 산업 현장에서는 인문학을 강조하는데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하소연한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은 필수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든 것은 인간의 삶을 잘 꿰뚫어 본 결과다. 공학적 지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어떤 방향이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인문학적 사고의 몫이다. 공학은 실천 수단일 뿐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엔지니어지만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한다. 정보기술(IT) 진화 방향을 설명하면서 세계사 지식을 활용한다. 그는 역사를 보면 기술 진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대학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에서는 '21세기식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꼬집기도 한다. 주로 인문학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과 통폐합과는 별개로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확대했더라면 이런 비판은 피할 수 있었다. 대학은 사유 능력을 키우는 곳이다. 10년 전 제임스 플러머(James Plummer) 스탠포드 공대 학장에게 대학교육의 본질을 물어봤다. 플러머 학장은 "대학은 문제 해결능력을 길러주는 곳"이라며 "기술을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really silly)"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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