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 어떤 것이 상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따라서 …… 절대적인 것은 존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인 것이라야 한다. 또한 절대성마저도 상대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이라면 절대적인 것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성은 절대성을 전제로 해야 성립하는 개념이다. 상대성과 상대가 되는 절대성의 개념 없이 상대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상대성은 절대성의 근거가 되고, 절대성은 상대성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말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절대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론 역설이지만, 세상은 근본적으로 모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상대 평가에서 절대 평가로 전환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는 수능 시험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능시험을 절대 평가로 바꾸는 것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사는 이미 절대 평가로 치르고 있으며, 영어도 2018 수능부터 절대 평가로 바뀐다. 나머지 국어, 수학, 사회, 과학도 2021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 모임’이라는 단체에서는 반대를 하고,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대안연구소’에서는 찬성의 입장이다. 단체의 이름만으로 그 논거를 거칠게 추론해보면, 수능시험을 상대 평가로 할 때 ‘더 공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이고, 절대 평가로 했을 때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리라.
먼저 개념을 정리해보면, 수능시험에서 상대 평가란 ‘성적으로 줄을 세워서 일정한 퍼센트별로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고, 절대 평가란 ‘다른 학생과 비교하지 않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내가 점수를 받은 대로 등급을 받는 방식’이다. 절대 평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대 평가는 과도한 입시 부담을 조장한다는 점, 상대 평가를 하는 수능시험이 좋은 수업을 방해한다는 점, 상대 평가는 학생들의 협업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의 계발과 신장을 방해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절대 평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수능의 모든 과목이 절대 평가가 되면 수능 시험이 변별력이 없어져 무력화되고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변별하게 되는데, 학생부종합전형은 현대판 음서제도라고 할 수 있어서 돈 없고 빽 없는 학생들에게는 공정하지 않다는 점, 재수생에게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절대 평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평가 안에 들어있는 상대성을 간과하고 있다. 수능을 절대 평가로 하더라도, 대학에 들어갈 정원이 정해져 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경쟁하는 이상, 입시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사나 영어를 절대 평가로 바꾸어 이 과목에 대한 입시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영어 학원이 많이 없어져 사교육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허상이고, 일종의 꼼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