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앞자리에 마주보며 알콩달콩 지내던 언니가 정년을 맞아 40년 몸담았던 공직을 명예롭게 떠났다. 마지막 출근길에 아침 조회시간에 “마지막 출근길이라 생각하니 너무 아쉽네. 늘 빨리 정년이 되어 편하게 쉬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100세 시대를 맞아 퇴직 후 4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적잖은 고민들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는 편인데 먼저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면 뒤따라 그 길을 가야하는 후배로서 그들의 가슴 언저리에 수놓아진 열정의 흔적 속에 숨겨진 갈등의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과연 정답이 무엇일까 자문해 볼 때가 있다.
캐나다 퀸스대학 철학교수 크리스틴 오버롤의 저서<평균수명 120세, 축복인가 재앙인가>라는 책은 이제 100세 시대를 맞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옛날에는 60세가 되면 환갑을 하고 온 동네 큰 잔치였는데 요즘에는 환갑을 하는 사람을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이제 60세는 예전에 40대 청년인 셈이다.
진시황제가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았듯이 의학의 눈부신 발달은 각종 이름 모를 불로초 약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으며, 멀지 않는 미래는 우리 몸속의 모든 장기들도 고장이 나면 새로이 대체가 가능하다고 하니 100세가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알약 한알로 하루를 견디고 또 다른 알약 하나로 젊은이의 탱탱한 20대 피부로 재생되어 영원히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틴 오버롤 교수는 ‘100세시대의 리스크’를 역설했고 이 리스크를 잘 극복해야지만 100세 시대의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리스크는 돈 없이 오래 살 때인데 젊은시절 논밭팔고 소 팔아 자식들 뒷바라지 하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 못했어도 자식들이 부모님 봉양하는 것을 거의 당연시 했지만 우리 시대는 자식들에게 그런 부양의 의무를 수행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에게 손 내밀지 않고 제 갈 길만 제대로 가서 제 밥벌이만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게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다.
두 번째 리스크는 아프며 오래 살 때인데 아무리 백만장자 아니라 억만장자라 해도 건강을 잃고 나면 사실 아무 사는 낙이 없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이야 말로 늙어서 마지막에가서 자랑할 수 있는 가장 값진 보배다.
세 번째 리스크는 일 없이 오래 살 때인데 젊어서는 하찮아 보이던 아파트 경비원이나 월 20만 원 짜리 공공근로나 노인일자리에도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는 것을 보면 꼭 돈보다는 삶의 소소한 일상 속에 낙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인생1막은 무거운 가장의 어깨에 짊어진 밥벌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그것이었다면 인생2막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 했던 것을 해보자. 이 일을 하노라면 내 가슴이 용광로처럼 활활 뜨거워지는 일, 진짜 내가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미리미리 인생 2막을 잘 준비하는 것이 지혜다. 100세 시대에 좌불안석하지 말고 풍요롭고 여유로운 노년을 멋지게 한번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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