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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지에서 찾은 인심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7/08/21 [20:05]
▲ 유서희 수필가    

가방이 없어졌다!
오래전부터 벼르던 반곡지의 새벽을 찍기 위해 새벽에 서둘러 반곡지로 향했다.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곳, 경산에 위치한 반곡지.
아담한 호수 속에 비친 나무의 자태는 나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물가로 내려가 사진을 찍으려니 어깨에 맨 가방 때문에 카메라가 흔들렸다. 마침 의자같이 생긴 나무가 있어 그 위에 가방을 놓아두었다.

 

그런데 몇 분 사이에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순간 함께 왔던 일행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하였으나 그들도 가방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방 안에는 핸드폰과 지갑, 차열쇠등 갖가지 소지품이 모두 들어 있었다. 하필이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 우산이 있었으나 우산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새벽 5시30분, 사진 찍기에 좋은 명소라고 하지만 아직 인기척이 없는 새벽이었다. 꼭 도깨비에 홀린 듯했다.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 가방을 놓으며 주위를 살폈을 때 언 듯 보았던 노부부가 떠 올랐다. 동네 사람인 듯 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을 지나간 사람이 그 두 사람 밖에 없었으므로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행이 있는 곳에 갔다 왔다 하는 사이 그 두 사람은 이미 눈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 넓은 시골에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찾는단 말인가.


마침 길 건너편 집에서 일터로 가기 위해 나오는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새댁이요 무슨 일인교?"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그 두 사람을 안다고 하면서 집을 알려 주셨다.
조급한 마음에 잰걸음으로 그 집을 향했다.
만약에 그 사람들도 가방을 못 봤다고 하면 어쩌나, 보았으면서도 못 보았다고 시치미를 떼면 어쩌나. 돈의 액수와 카드등 지갑 속에 들어 있을 금전적 가치를 계산하며 의심의 촉수를 세웠다. `그래도 시골이니 괜찮을거야`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마음과 `그래도 요즘 시골 사람들은 예전같지 않아` 라는 의심의 생각이 머리 속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예전의 우리네 시골은 훈훈한 인심이 있었다. 적은 양의 음식이라도 이웃과 나눠먹으며 정을 쌓아갔다. 며칠씩 집을 비울 일이 있어도 안심하고 가축의 끼니와 집 보는 일을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 없어도 도둑을 맞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신을 맞으면 방송을 하여 동네 사람들 다 함께 축하를 하였다. 잔치가 있거나 장례를 치루어야 할 때도 누가 일을 더 많이 하나 누가 더 일을 못하나 재지 않고 나의 일처럼 기뻐하며 성심으로 도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웃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내려 놓기도 하였다.


시골의 인심은 여름날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그려갔다.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라는 둥근 인심으로 사람 사는 풍경을 피웠다.
할머니가 알려 주신 집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혹시 반곡지에서 가방 하나 못 보셨어요?"
"아유, 그렇잖아도 어젯밤에 누가 두고 갔는갑다 싶어서 들고 왔제. 오늘 놔 뒀능교. 주변에 보이 아무도 없던데."


 놀란 나의 얼굴빛을 보더니 할머니는 주인을 찾아 주고도 괜히 미안한 눈빛이었다. "내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고대로니께 한번 보소."
 의심의 눈빛을 거두려는지 할머니는 기어이 그 자리에서 가방 안을 확인하게 했다. 아무 이상 없다며 안심 시켜 드리고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했다. 가방을 안고 돌아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더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의심 많은 세상이 되었다. 의심부터 하는 세상이다. 이웃과의 정이 그리워진지 오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 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도 알 길이 없다. 단절되고 삭막한 세상. 친절과 배려도 오해를 받는 요즘 반곡지에 찾은 훈훈한 인심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기뻤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야 했지만 천천히 걸으며 그 비를 흠뻑 맞았다.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하고 덜컥 의심부터 한 부끄러운 마음이 그 비에 말끔히 씻기 워 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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