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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묵고 삽시다
 
최영주 수필가   기사입력  2017/08/24 [16:20]
▲ 최영주 수필가     © 편집부

1970년대 20대 시절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돈주머니를 겸한 거뭇한 앞치마 두른 아주머니가 대형 양은대야를 잽싸게 버스에 밀어 넣으며 올라타곤 했다. 아주머니는 버스에 대형 대야를 싣는 일에 성공을 한 셈이었다.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 문 앞에서 차장과 실랑이를 벌이며 막무가내로 들이밀어 실은 끝에 아주머니가 승리를 한 것이다. 대형 대야를 들고 온 아주머니들은 어떻게든 타보려고 애를 썼지만 차장의 거센 거부로 버스에 오를 엄두도 못 내었다.

 

하지만 왜 태워주지 않느냐며 그악스럽게 다툼을 벌여 한순간 차장이 주춤하는 사이 기어코 타고야 마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지게꾼을 불러 지게에 대야를 얹어 가기엔 먼 거리이고 택시에 싣고 가면 좋겠지만 택시비가 비싸기 때문이었다. 대야는 거의 두 개씩이었다. 시꺼멓게 덮인 보자기 밑에는 과일이나 생선 등이 담겨 있었다. 차장은 대형 대야를 갖고 타는 승객을 극구 태우지 않으려고 했다. 대야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만큼 사람을 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짐값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고 짐을 들고 탄 사람의 요금만 받는 것이므로 차장은 그런 승객을 제일 질색했다. "같이 묵고 삽시다!" 겨우 버스에 오른 아주머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차장의 노골적으로 째려보는 시선을 받으면서 다툼질 끝의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묻힌 채 대야를 거칠게 밀며 소리쳤다. 빨리빨리 발을 움직여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승객을 향해 내지르는 항의이기도 했다. 차장한테 승차거부를 당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게 된 승객들에 대한 민망함과 비좁겠지만 양해를 해달라는 뜻도 담긴 무마용의 말을 오히려 매몰차게 터뜨렸다.

 

승객이 그득하게 서 있어 대야를 안착시킬 공간이 좁다 싶으면 아주머니는 목청을 한 번 더 드높였다 "같이 좀 묵고 삽시다!" `같이 좀 묵고 삽시다`에서 `좀`에 더욱 힘을 주면서 대야를 세게 몰아넣었고 `삽시다`에서 한 번 더 강하게 쏘아붙이며 콱 밀어붙였다. 승객들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데도 아주머니의 고함에 바짝바짝 안쪽으로 당겨 서곤 했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도 아주머니들은 우산도 없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차장과 옥신각신하며 대야를 들고 탔다. 얼굴이며 옷이 비에 흠씬 젖어서도 아랑곳 않고 대야를 챙기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

 

어느 길바닥에서 난전을 벌여 하루의 생계비를 구해야 할 목숨과도 같은 밑천이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버스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균형을 잡으면서 어린 자식을 보호하듯 대야에 눈을 박고 몸을 흔들리며 서 있었다. `같이 묵고 삽시다`를 처음 듣게 된 건 1970년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당당함을 지나 어딘지 뻔뻔한 느낌을 주는 한 마디가 그렇게 촌철살인적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치 못함, 부끄러움, 면구스러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거두절미해버리고 억지를 들이대는 자신에 대한 이의제기를 애초에 차단시킨, 같이 묵고 삽시다, 로 짧고 굵게 상황을 종료시켰다.

 

요즘 뉴스에서 툭하면 부모가 자식한테 몹쓸 짓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유치원에 가 있는 어린 딸을 아빠가 중도에 불러내어 차에 태워 산에 데려가 죽여서 버리고, 집을 어지럽힌다며 네 살짜리 천진난만한 자식을 침대에 묶어 뒀다가 숨이 끊어지게 하는 등의 접하고 있으려면 가슴이 컥 막혀 오는 뉴스들이 쏟아진다. 뉴스 속의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자식 양육부터 귀찮게 여겼다. 부모인 `나만 살겠다`고 제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안중에 없었다. `같이 묵고 삽시다`가 몇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뒤통수를 후려치듯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든 말든 우선 `내가 살고보자`는 의미로 들리던 그 말이 이토록 그리워진다. 그 아주머니들이 그토록 억척스럽게 했던 건, 오직 자식을 굶기지 않고 학교에 보내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쌀을 살 돈을 못 벌면 국수라도 먹이겠다고, 아이들 책값, 공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것이다. 짐값으로 차장한테 한 사람 요금만 지불했어도 그 멸시는 받지 않았을 터……. 하지만 자식한테 사줘야 할 한 자루의 연필이 눈앞에 어른거려 그처럼 악착같이 했을 것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바닥에 대야의 사과가 굴러 떨어지면 승객들한테 조심히 줍게 하고 생선비린내를 온통 차안에 진동시키면서 그 겸연쩍음을 같이 묵고 살자며 눙치던 아주머니가 외려 소중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다. `내가` 힘이 든다는 의미를 `같이` 먹고 살자고 풀이해 놓던 그녀들. 늘 배가 고픈 내 자식들이지만 어울려서 `같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다는 염원이 피멍처럼 서려 있었다. 같이 묵고 삽시다가 빗줄기 속으로 처연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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