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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감면과 채권 추심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기사입력  2017/09/05 [15:23]
▲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는 바빌론에서 왕실에 술을 공급하는 관리로 일했다. 바빌론에서 편히 살 수도 있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고국을 재건하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여겼다. 그래서 왕에게 간청해 유대 총독 자리를 얻어냈다. 느헤미야는 귀국 길에 찬란한 청사진을 그렸다. 폐허로 전락한 예루살렘을 하루속히 복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예루살렘이 옛 모습을 되찾으면 유대 공동체도 자연스레 재건된다. 그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대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시달렸다. 공동체는 갈등과 반목으로 붕괴 조짐을 보였다. 채무 위기가 근본 원인이었다. 숱한 백성들이 채무 노예로 전락했다. 가난한 농부들은 부채나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아들 딸을 노예로 내줘야 했다. 한(恨)과 증오가 유대 곳곳에서 싹을 틔웠다. 느헤미야는 바빌로니아식 해법으로 위기를 해결했다. `부채 탕감` 조치를 단행했다. 이런 채무 감면은 오랜 관행이었다.


구약의 신명기나 레위기에 따르면 채무면제 조치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됐다. 25주년이나 50년을 가리키는 `주빌리(jubilee)`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느헤미야는 일거에 민심을 장악했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른 민족들이 재건 작업을 방해했지만 이겨냈다. 유대 내부의 결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고대 중동(中東) 지역에서는 자주 채무 면제 조치를 취했다. 이는 고대 사회가 자영농(自營農)을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영농은 평소에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즉시 징집을 통해 전투력으로 활용됐다. 지배층 입장에서 용병이나 노예를 병력으로 활용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들에게 충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용병은 돈을 받지 않으면 즉시 전선에서 이탈한다. 노예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목숨을 바쳐가며 간절히 지켜야 할 게 없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마다 채무 면제 조치를 단행했다. 빚 때문에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도 해방됐다. 왕들은 즉위 자체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일부는 왕위에 오른 후 죽을 때까지 수시로 채무노예를 해방했다. 사회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채권자들은 이런 채무면제 조치에 대해 반발했다. 경제 논리로 따지면 당연했다. 이들의 채권 회수 노력은 집요하고, 교묘했다. 로마의 12표법이 대표적인 예다. 12표법은 채무자가 빚을 갚으면 채권자가 채무자를 처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아울러 빚을 갚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도 주력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잉험은 "인도 유럽어족(語族)에서 빚(debt)은 죄(sin)와 동의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독일어에서 `채무(Schuld)`라는 단어는 `죄`를 뜻하기도 한다. 채권 회수 노력은 종교에도 침투했다. 구원은 `상환`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빚을 갚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죄의식을 심어준 셈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한다는 메시지가 채권 추심에 활용된 꼴이다. 주빌리 은행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빚을 갚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빚을 대신 갚아준다. 빚 때문에 헐떡거리는 이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서다. 주로 기부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대부분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끌어들인 빚이다. 하지만 한계 신용자들의 대출도 적지 않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을 부채 탕감 프로그램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금 중개와 부채 감면은 별개의 영역이다. 두 가지를 섞어 놓으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은행이 부채 감면에 참여하면 자금 조달 기능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자기 돈이 떼일 게 뻔한 데 돈을 맡길 사람은 없다. 자금중개시장은 위축되고 만다. 금융의 상거래 지원 기능도 마비될 수밖에 없다. 부채 감면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필요하다. 채권 추심 행위는 금융시장 나아가 시장 경제를 위해 필수적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회운영 원리는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피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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