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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편지>가을밭에서
 
진응 남창 내원암 주지스님   기사입력  2017/09/13 [16:07]
▲ 진응 남창 내원암 주지스님    

가을이다. 남쪽으로 먼 길 떠날 아쉬움에 지난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리도 절절했을까. 소리 따라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새벽 무렵에 폭우로 변하여 여름내 목말라했던 대지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멍하니 감상하는 것도 잠시 며칠 전에 모내기 하듯 파종한 배추와 겨우 싹을 틔운 무싹들이 이 비에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가진 것만큼 걱정이라더니 오랫동안 망설이다 시작한 김장 채소밭이 시작하자마자 폭우로 엉망이 되어 버릴것이라 생각하니 빗줄기 감상은 이내 우스운 꼴이 되었다.


말복이 지나고 백중이 지나 처서무렵이면 우뚝선 벚나무 가지에도 하나둘씩 낙엽이 진다. 이때 농부는 밭을 정리하고 무, 배추, 김장거리 채소 파종 준비를 해야한다. 사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뭐 거창한 농군이나 되는 것같지만 사실 배추농사가 두번째인 초보 농군이다.깊은 산에 살면서 무 배추농사 잘 지어서 겨우내 절 식구들도 먹고 오는 손님들께도 산중의 고랭지 채소맛을 보여주고 싶은 소박한 욕심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밭가득 뿌리내린 잡초와 도라지를 캐내는 일부터 쉽지않았다. 그래 일삼아하지말고 놀이삼아 마음 밭을 가꾸듯 채소밭을 가꾸어보자 생각하니 많이 수월해졌지만 일은 땀으로 쉽게 지쳐버리고 그때마다 벚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망상으로 배추농사를 지었다.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는다.
세상에 나눠 줄 것이 많다는 듯이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올 배추농사를 잘 지어서 항아리 가득 김장김치를 해놓고 다같이 나눠먹어야지 뿌리내리지도 않은 밭에 서서 온갖은 망상은 쉽게 멈출 줄을 모른다.


 동치미는 어떻게 담글까? 왜 요즘 김치맛은 모두가 달달해서 옛맛이 나지 않을까. 늙어가는 내 입맛이 변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낙엽에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가."하고 마지막 구절을 읖조리다가 문득 무는 배추에 우선순위에 항상 밀릴까하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요즘 농사꾼은 배추씨앗을 직접 밭에다 파종하지 않는다. 미리 배추 두둑을 준비해놓고 종자전문가가 키운 모종을 종묘상에서 구입해서 논에 모내기하듯 어느정도 자란 모종을 사서 심는다.

 

배추농사의 혁명이다. 그런데 왜 무는 씨앗만 고집할까 경제성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무특성이 옮겨심기를 싫어해서 종묘상에서 굳이 포트라는 모종판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일까? 무와 배추를 반반씩 심어놓고 `배추밭에 섰노라` 하는 단어선택부터 시작해서 김장은 `배추 몇 포기 했습니다` 하면서 무김치를 얼마나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는 늘 배추에 대접에서 밀린다. 김장때에도 무김치는 배추김치를 다 해놓고 섭섭지 않게 조금만 담근다. 그것도 모자라 무는 배추 속으로 들어가 김치의 양념이 스스로 되니 대접이 덜할 만도 하겠다.


배추도 버릴 것 하나 없는 중요채소지만 무를 채소중의 채소라 생각한다. 옛날 백성을 가엽게 여긴 위민의 선각자가 중국 사신으로 가서 반출이 국법으로 정해진 무씨앗을 신체의 비밀한 곳에 숨겨와 무에는 그 냄새가 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무는 우리들 삶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존재다. 산삼에 버금가는 채소가 무다. 그리고 무청은 또다른 요리의 재료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 모든 요리의 기본이 되는 국물맛을 내는 기본이 무가 아닐까? 시원한 국물맛은 무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가 항상 보조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요리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제일 앞자리에 설 채소가 무이기 때문이다. 무우의 바른 표기는 무다. 대승경전의 꽃이라 하는 반야심경에는 숱한 무가 무밭의 무처럼 등장하여 무한 긍정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무라고 이름했을까? 이 가을 밭의 무가 배추밭을 더욱 빛내고 씨만 뿌려 홀대하듯 키워도 당당히 가을 밭의 주인공으로 자라는 이유다.

 

지난 폭우에 흘러내린 두둑에 다시 북을 돋우며 내면의 심전에도 나눔과 배려의 씨앗을 심고자 한다. 소쩍새 울음소리도 마지막이었을까 벌써 가을바람에 키 큰 벚나무와 팽나무고목은 자잘한 낙엽을 엽서처럼 흩뿌린다. 모두가 주인공만 되고자 하는 세상. 무처럼 없는 것처럼 존재감을 가지자며 가을 김장밭으로 낙엽을 내린다. 마음은 벌써 한겨울 절간 아랫목에서 동치미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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