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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즐거움, 그 상실에 대하여
 
장주연 서울 청담고 교사   기사입력  2017/09/20 [18:41]

 

▲ 장주연 서울 청담고 교사    

필자의 다섯 살 딸아이는 최근 들어 부쩍 더 글씨를 배우고 싶어 한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최대한 문자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필자이기에 따로 문자를 가르치지 않지만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워오거나 스스로 깨치는 문자나 알파벳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글씨를 배우는 것이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부러 가르치지는 말자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이맘때는 문자에 갇히기 보다는 상상하고, 느끼고,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밤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딸아이에게 `책은 유치원에서만 읽는거야`라고 농담을 하며 거의 책을 읽어주지 않는 것은 사실 책이 아이의 생각을 제한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저 워킹맘으로 살면서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에 또 책을 읽어주는 노동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아이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보다는 블록놀이와 그림그리기 등 주로 혼자하거나 오빠와 둘이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는 딸아이지만 글씨나 숫자 등 조금이라도 무엇을 가르쳐주는 날이면 그 배움의 즐거움에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 아니 자신의 배움에 대한 자부심에 `엄마 이거 보세요.` `아빠 이거 보세요.`하며 자랑하는 딸아이를 칭찬하면 진짜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한다. 다섯 살 아이에게는 `배움`이 곧 mere pleasure, 즉 `순전한 기쁨`이 된다. 필자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이토록 배움이 즐거웠던 다섯 살 시기를 거쳐 어느덧 의무교육의 마지막 시간을 지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불과 10여년 전에는 이 학생들이 반짝 반짝 눈을 빛내며 배우는 것을 진정으로 즐거워하던 다섯 살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며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지겨워하고 싫어하고, 심지어 거부하게 되었다.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누가 아이들에게서 배움의 즐거움을 빼앗아 갔을까? 배우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길을 잃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다림`의 부재가 아닐까.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 교육과정, 학부모, 교사의 조합이 아이들을 몰아대며 조급하게 만들고, 배움을 권리가 아닌 의무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즐거움과 자신감을 얻어야 할 배움의 길에서 `패배감` 과 `좌절감`, `무기력함`을 느끼며 `도전`이 아닌 `포기`를 배운 탓이 아닐까.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공부를 강요하기 전에 먼저 `기다릴게. 준비되면 말하렴.`라고 자신에게 적정한 속도에 맞춰 배우고 성장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공부만 잘하면 되.`라며 삶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주입시키지 말고,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다.`라고 말하며 인격이 먼저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학원보다는 자연에 익숙한 아이가 되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아이가 되고, 책을 통해 작가와 소통하기 전에 놀이를 통해 또래와 소통하는 것을 먼저 배우는 아이가 될 시간을 준다면 아이는 어느새 배움의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스스로 배움의 길에 걸어 들어온 아이여야만 대한민국의 살인적인 입시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배움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 필자의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쯤 되면 대한민국의 `입시지옥`이 `배움의 천국`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지 않기에, 딸아이가 이 지옥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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