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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자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7/09/21 [17:36]

 

▲ 유서희 수필가    

신발은 그 사람의 삶을 담고 있다. 발길이 가는 곳마다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 신발이다. 그래서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과 성격, 취향을 알 수 있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닳은 신발이 그 사람의 처지를 대신 말해 주었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은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사람마다 몇 켤레의 신발을 가지고 있다. 운동화 구두 샌들…….


외출의 목적과 계절에 어울리는 신발. 또는 의상에 따라 신발이 달라진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걸음걸이의 자세가 어떠한 지 그 사람의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신발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다. 맨발을 보인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을 온전히 보여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목욕탕을 같이 다녀오면 허물없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맨발을 보여 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서로의 발 모양을 두고 한참 수다를 떨기도 한다. 바닥에 누워 허공에 발을 나란히 올려놓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누구의 발이 예쁘고 누구의 발가락은 못생겼다며 핀잔을 주며 서로의 내밀한 곳 까지 모두 알아가는 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나면 거리감이 있던 친구도 모두 친해지게 된다.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지 못하고 변심한 것을 두고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하는 표현도 사람의 마음이 신발에 가장 많이 담기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드라마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신발을 나란히 놓아두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는 동안 힘들었던 마음과 미움,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버리겠다는 뜻이다.
신발을 나란히 놓으며 쓰다듬는 장면을 볼 때면 살아오는 동안 함께 해 왔던 신발이기에 자신의 마음인 듯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는 듯 보였다. 신발은 비움과 버림이다. 발레리나 강수지의 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마디 마디 뼈가 붉어져 마치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 같아 보였다.


그녀는 하루 열 아홉 시간씩 1000여 켤레의 토 슈즈가 닳아 떨어질 때까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세계 각국의 발레리나들이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하는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다. 그녀에게도 고통과 인내의 한계가 찾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인고의 시간 끝에 그녀는 모나리자의 미소 못지않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 욕심을 버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서야 맑게 비워진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맨발로 걷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지압이 되어 신체적인 건강을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심리적인 효과가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 보호를 받던 신발을 벗고 여러 가지 위험에 자신의 발을 노출 시킨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은 심리적인 자유로움과 직접적인 자연과의 소통에서 오는 안정감과 즐거움으로 인한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마음의 옷을 벗는 것이다. 사회적인 신분과 직업, 개인의 취향을 모두 벗어버리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길이다. 요즘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의 생이 이 가을과 만나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더 오랜시간 동안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담기 위해 나의 신발을 벗어야겠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오래 오래 바라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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