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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두박질
 
설성제 수필가   기사입력  2017/10/15 [15:09]
▲ 설성제 수필가    

마음이 쫓기는데 비까지 내렸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길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 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마음에 산적한 풀지 못한 숙제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엎어져 있는 동안 모두가 나를 내팽개쳐버린 듯했고 그 누구도 나의 비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도움을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바닥이 미끄덩거렸다.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옷은 고였던 빗물에 흠뻑 젖었다. 다시 차에 올랐다. 백미러 속 얼굴이 피로 젖어 있었다.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넘어지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특별한 일일 수도 있다.

 


급하게 걷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하게 다니는 모든 사람이 넘어지지는 않는다. 50여 년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 특별한 일이라고 여겼다. 나한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특별히, 라고 생각하니 다친 데도 특별했다. 곤두박질을 쳤는데 이마, 눈, 코, 이는 무사하고 인중과 턱이 찢어졌다. 무릎, 팔, 손을 다치기는 했지만 타박상에 불과했다. 이만하니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싶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특별히 맞이한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며칠 후 현장에 가보니 수도꼭지가 있고, 제법 두꺼운 널빤지가 깔려 있었다. 걸려 넘어진 게 뻔했다. 그것도 내 앞에 주차한 차가 금방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겨우 주차를 했는데, 그 차가 좀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조금 더 비켜줬더라면, 그리고 그 자리에 주차를 했더라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수도꼭지나 널빤지는 그 자리에 있어야할 물건들이었다. 분명 그것들은 치울 수 없는 것들이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돌아서 가거나 의식하며 지나가야 하는 것인데 나는 개의치 않고 무작정 지나갔다. 발로 뻥뻥 차고 굴리며 지나갈 수도 있는 하찮은 것들이었다. 생각과 말을 함부로 했던 즈음이었다. 없는 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속에 담아놓고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속에 담아놓자니 오장육부가 타들어갔다. 이대로 참는다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내질렀다. 그러나 상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나의 뜻을 받아들여 주지 못하니 나만 상처 나고 말았다. 스스로 쏟아낸 말에 스스로 곤두박질 친 기분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스스로 곤두박질쳐서 마음이 찢어졌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변인들에게는 속상한 나의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직 상대만 알아주면 그만이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평소 사람들과의 교통을 등한시하고 있었던 결과였다. 또 다른 넘어질 만한 매개를 찾아보니 연로한 부모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형제간에 사랑하지 못하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며 남보다 나 자신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타인이나 일에 진심과 전심과 중심으로 대하지 못한 것이 걸렸다.


그야말로 참으로 가벼운 생각과 말과 행동이었다. 그러니 곤두박질 칠 수밖에.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가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오십 년 가까이 지나오면서 쟁여놓은 내 존재가 가벼운 조약돌 하나만큼의 무게도 되지 않는 줄 미처 몰랐다. 가벼워서 날아오르기 쉬운 것이 아니라 곤두박질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저 가볍게 사람을 대하고 쉽게 벗어나고 털어버리고자 했기에 어찌 그 진지한 영혼들의 관심과 사랑이 내게 힘이 될 수 있었으랴. 뼈도 생생하고 이도 붙어있으니 이 곤두박질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경고로 다가왔다. 여전히 이대로 살다가는 그야말로 생애 큰 곤두박질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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