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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정호식 학성고 교사   기사입력  2017/10/25 [15:30]
▲ 정호식 학성고 교사    

소노 아야코는 `약간의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떤 삶의 태도를 말함인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거리를 두어야 통풍이 가능하고,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맥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때 인맥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약간의`라는 한정어가 의미심장하다. `약간의 거리`나 `적당한 거리`가 아닌, 엄청나게 먼 거리를 두면 통풍은 훨씬 잘 되겠지만, 그 바람은 그 `사이`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자녀도 타인처럼 거리를 두고 대하되, 잘못을 했더라도 묵묵히 감싸주는 정도의 `적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칭찬받는 삶에 너무 달라붙으면 끊임없이 헌신적인 태도를 요구받게 되니까, `약간의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결점을 감추는 데 달라붙으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완벽한 금슬ㆍ존중받는 삶에 달라붙으면 오히려 늘 불안하게 되니까 `약간의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소노 아야코는 어떻게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 소노 아야코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은 가혹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선천적인 고도근시를 앓았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50대에는 실명의 위기에까지 처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누구보다 일찍, 또는 절절하게 인간의 불완전함, 인간 세상의 모순과 역설을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세상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기 때문에 그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인간의 철학과 신앙을 비롯한 이성적 노력이 숭고하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녀에게 비선택적으로 주어진 극단적인 불편함이 `약간의 거리를 두는` 편안한 삶의 자세를 만들어 준 것이다. 조남주가 말하는 `82년생 김지영`은 `약간의 거리`를 두지 못한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그녀가 속한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는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 1982년에 태어나, 딸로서, 여학생으로서, 여자 친구로서, 여직원으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가는 사람을, 아니 여자를 대표한다. `학생`이 아닌 `여학생`, `직원`이 아닌 `여직원`이라는 명명(命名) 자체가 비주류를 규정하는 말이다. 주류는 비주류가 느끼는 소외와 차별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모든 시설과 물건들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왼손잡이만 불편을 느끼듯이. `여혐`,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내밀하게 배어있는 남성 우선주의적인 문화와 제도, 의식들을 남성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물욕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경쟁하기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또는 부와 명예와 권력 등에 대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서 성실하고 열심히 관계를 유지하고 성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처를 받는다, 자신과 친한 사람들로부터, 친한 만큼 비례하여 깊은 상처를.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김지영이 택한 방법은 `거리두기`이다.

 

김지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남편에게, 시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해버림으로써 `아내`나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김지영이 된다. 김민식은 `영어책 한 권이라도 외워보라`고 말한다. 영어 책을 한 권이라도 외워보는 것은 삶에 달라붙는 태도이다. 김민식의 경우도 소노 아야코처럼 단점이나 곤궁함을 극복하려는 데서 나온 자세이다. 김민식의 결핍은 소노 아야코에 비하면 평범하다. 비교적 못났고 내세울 만하게 잘 하는 것 없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영어 책 한 권을 외워본 것이고, 이러한 경험이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이나 태도로까지 전이되고 확산되어 성취감과 자신감을 획득하게 된다. 현실에 달라붙어 치열하게 노력함으로써 `거리`를 못 느끼거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할까.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한 삶의 태도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민식은 [왕좌의 게임]에서 인상 깊은 구절로 라니스터가 존 스노에게 말한 대사를 인용했다. "절대 너 자신이 서자(庶子)라는 걸 잊지 마. …… 그걸 너의 강점으로 만들어. 그럼 그게 절대 너의 약점이 되진 않을 거야. 그걸로 스스로 무장한다면, 남들이 그걸로 너를 공격할 수 없단다." 김민식은 한 가지라도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소노 아야코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지점을 인생에 만들어 두라.`고 말한다. 결점을 감추기보다는 드러내서 강점으로 만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삶의 태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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