體露金風(체로금풍)! 금풍(가을바람)이 부니 형체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절집에 전해오는 유명한 禪句(선구)가 있다. 산천초목이 자기만의 색깔로 계절을 표현하는 가을이다. 어디서 골바람이 몰려와 만산의 홍엽이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숨어있던 바위가 드러나고 숲에 가리웠던 산의 모습이 온전히 나타난다. 도솔천 내원궁에 들어가 현실세계의 고통을 잊고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삶이 우리 현실세계의 꿈이다. 단풍이 색색으로 곱고 사람들은 잠시 근심을 두고 떠난 산행이라. 산색도 낯빛도 가을산은 극락이요 천당이다. 이 산에 기대어 살면서 가끔 산이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대운이라 함은 클 大자에 구름 雲이니 큰 구름이 자주 드리우는 산일까 아니면 동해바다에서 바라본 산이 구름처럼 높아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깊은 의미가 있을텐데 말이다. 대운산이라 불려 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광산 내원암 칠성각 조성기를 쓴 1919년에도 분명 불광산이라는 산 이름을 사용했고 해방후에도 불광산 내원암이라는 축원문이 아직도 전해져 온다. 불가에서는 아직도 대운산은 불광산이라 호칭한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오래된 읍지에도 울산 불광산으로 표기되어있다.
추측하건대 행정구역이 해방 후 부산과 경남으로 나뉘어 지면서 불광산군에 속해있던 불광 봉우리를 부산시에 넘겨주고 정작 주봉 불광산은 대운산으로 울산 경남의 산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산 이름은 대부분 의미 있는 두 글자를 합쳐서 산이라는 명사를 붙이는데 대부분 산이름 속에 깊은 속뜻이 있다. 그런데 유독 이 곳은 큰 구름산이라고 했을까. 지리, 가야, 천황, 제약, 금강, 보현, 한라 등 산이름은 깊은 의미가 있고 설화와 전설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대운산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옛지명 불광산에는 대원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9개의 암자가 곳곳에 있었다고 하며 울산을 대표하는 큰 절이었는데 조선후기 숭유억불시대에 급격한 사세의 위축과 과도한 조세부담으로 폐사되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곳이 이 곳 내원암이다.
절에 폐사되고 이 지역 많은 불자들은 대원사 대원사지하며 옛기억을 회상하며 사라진 대원사를 그리워하고 추억했을 것이다. 동해 남부지역이나 김해 마산 등 해안가는 경남의 어느 지역보다 발음을 혀끝으로 쉽게 하는 前舌(전설)모음화 하는 경향이 많은데 대원사를 대운으로 발음한 것이 대운산 이름으로 변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제일봉 대운산 제이봉 하는 봉우리 이름도 작명이 아쉬운 부분이다. 제이봉은 우리 절집에서는 도솔봉으로 불리워 진다. 행정을 책임지는 관공서나 산 꾼들이 부르기 쉽고 편리하다고 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산 이름을 쉽게 개명해서는 안 된다고 보며 산 이름도 많은 전설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산의 생명력이 있을 것이다. 산은 개명을 원하지 않았는데 후대사람들은 편리한대로 또 다른 이름으로 산을 부른다. 아무튼 이 가을 대운산은 누가 어떻게 불러도 묵묵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오색단풍으로 채색하고 가는 계절을 아쉬워한다. 대운산의 옛 지명 불광산은 佛光普照(불광보조)의 준말이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이 사바세계에 두루 비춘다는 깊은 뜻이다. 이 대운산을 등산하는 사람은 세상으로 향하는 자비심을 가슴가슴 속에서 키워서 산을 닮아가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산을 올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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