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한영채 시인
 

병실 너머 현대아파트 107동
거미 한 마리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엉덩이 쑥 내밀며
비단실을 뽑듯
낡은 글자를 지우며
붓 놀린다 리듬을 탄다


계단을 오르는 길 힘들었지만
오른손 연신 허밍허밍 붓 놀린다


삼십 년 터전 지우고 다시 박음질 하는
낡은 벽, 상처를 꿰매 듯
비단실로 어두운 내력 지우고 쓰고 있다


그가 걸어 온 길이
허공을 빌려
주인 없는 폐가 담 쌓는 일이지만
허기진 배 안고 허리띠 졸라맬 때마다
붓 들어 길을 만들고
새로운 길이 되고


무릎 굽혀 발을 툭툭 치자
이마에 맺힌 구슬땀이 길 위에 떨어진다


지나 온 길 축축하지만 저녁바람이
헹굴 것이다 일몰 오기 전
바람 모서리에 선 거미
아파트 벽을 치유하고 있다

 


 

 

▲ 한영채 시인    

한 직장에서 삼십 년을 일한 거미가 있다.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오랜 긴장이 풀렸는지 퇴직 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원 창 밖 낡은 아파트 도색하는 일 거미 오랜 터전을 다시 박음질하는 저 붓놀림, 사람이나 사물이나 오래된 것에 대한 숭고함,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용기를 내라고 응원한다. 인생 2막을 향하여.


 
기사입력: 2017/11/15 [14:13]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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