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너머 현대아파트 107동 거미 한 마리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엉덩이 쑥 내밀며 비단실을 뽑듯 낡은 글자를 지우며 붓 놀린다 리듬을 탄다
계단을 오르는 길 힘들었지만 오른손 연신 허밍허밍 붓 놀린다
삼십 년 터전 지우고 다시 박음질 하는 낡은 벽, 상처를 꿰매 듯 비단실로 어두운 내력 지우고 쓰고 있다
그가 걸어 온 길이 허공을 빌려 주인 없는 폐가 담 쌓는 일이지만 허기진 배 안고 허리띠 졸라맬 때마다 붓 들어 길을 만들고 새로운 길이 되고
무릎 굽혀 발을 툭툭 치자 이마에 맺힌 구슬땀이 길 위에 떨어진다
지나 온 길 축축하지만 저녁바람이 헹굴 것이다 일몰 오기 전 바람 모서리에 선 거미 아파트 벽을 치유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삼십 년을 일한 거미가 있다.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오랜 긴장이 풀렸는지 퇴직 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원 창 밖 낡은 아파트 도색하는 일 거미 오랜 터전을 다시 박음질하는 저 붓놀림, 사람이나 사물이나 오래된 것에 대한 숭고함,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용기를 내라고 응원한다. 인생 2막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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