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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의 하얀 집
 
강이숙 수필가   기사입력  2017/11/20 [15:46]
▲ 강이숙 수필가    

늘 뭔가에 쫓기듯 허둥대며 살아간다. 잠시 멈춰 지친 일상에 휴식을 불어 넣어주고 싶다. 저 너머 유토피아를 동경하며 아련한 그리움을 꿈꾼다.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을 그려 보며 한 몸 뉠 곳을 찾는다. 닿으면 잡힐 듯 평화로운 언덕위에 하얀 집이 있다. 아무런 걱정도, 슬픔도, 아픔도 없을 것 같은 그곳, 그곳에 살고 싶다. 이른 새벽이다. 사방은 채 걷히지 않는 어둠과 적막 속에 밤새 내린 눈으로 온통 순백의 세상을 하고 있다. 못다 내린 눈들은 아직도 앞 다투어 내리고 있다. 방한 파카와 털모자로 완전무장을 했는데도 시린 냉기가 가슴팍을 파고든다.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유럽여행을 감행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로운 세계와 맞닿는 신비로움에 푹 빠졌다.

 

특히나 머나먼 지구 반대편 이국땅에서 맞이하는 눈은 설렘과 감흥 속에 가슴 뭉클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총 10박 12일의 여정 동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거쳐 오늘은 7일 째인 스위스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 늦은 오후에 로마에서 이곳 인터라켄으로 와 하룻밤을 묵고 새벽 일찍부터 융프라우에 가기위해 채비를 했다. 말로만 듣던 알프스의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 인터라켄 역으로 향했다. 우리만 서두른 줄 알았는데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기는 순식간에 대합실을 가득 메웠다. 드디어 만년설이 덮여 있는 융프라우 정상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의 빨간색의 기차는 새하얀 눈밭에서 채색 대비가 선명해 아름다웠다.

 

여느 기차가 그렇듯 철커덕 소리와 함께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놓여 있는 궤도 위를 분주히 달렸다. 백두산 높이의 두 배나 되는 정상의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서서히 동이 터 왔다. 명료한 아침 햇살이 산봉우리를 덮고 있는 눈 위로 부서져 내렸다. 눈이 부시도록 청정한 자연의 황홀한 광경 앞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열차가 지나는 산등성이에 삼삼오오 자리한 집들은 밤새 내린 눈을 머리에 이고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살레풍의 목조 세모 집들은 옹골지고 매혹적이었다. 동화 속에서나 봐 왔던 산악마을은 호젓하고 그윽하였다. 왠지 모를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행여나 놓칠세라 뚫어져라 담고 또 담았다.

 

너무 고요해서 사람이 사는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 살다 떠나가고 형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형인 것 같은 착각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 어떻고 빈 집이면 어떠랴. 단지 지금 보이는 그것만으로 마음의 안식을 얻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눈 덮인 겨울의 풍경처럼 간간이 부는 바람에 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지기도 하였다. 광활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여민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청량한 바람이 몸 안 곳곳에 스며들었다. 불쑥, 저 한 켠 어디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나타나 사랑의 도레미 송을 부르며 마음껏 설원을 누빌 것만 같았다. 이 벅찬 순간을, 나는 지금 알프스의 하늘을 날고 땅을 밟고 향기를 맡는다. 일상에서 동떨어진 느낌 속에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른다. 아니 정지되어 있다.

 

고요와 차분함이 충만으로 바뀌어 내면의 중심으로 가득 차오른다. 정열의 전사 빨간 열차는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시야를 장악하고 있는 설산의 장엄함을 놓칠세라 연신 휴대폰 셔터로 눌러보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경이로움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담아낼 수 있을까? 메마른 마음에 여유로움이 촉촉하게 스며든다. 더불어 영원히 녹지 않는 은빛 눈이 되어 내 가슴속에 오래오래 잊지 못할 그리움으로 간직될 것이다. 훗날, 어쩌면 이 멋진 융프라우의 위용보다도 그 멀고 낯선 세상의 모퉁이에 서 있었던 순간들이 불현듯 먹먹해질지도 모른다. 한낱 거대한 대자연 앞에 미물에 불과했을지라도 언덕위의 하얀 집에 대한 동경만큼은 위대한 꿈으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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