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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정호식 학성고 교사   기사입력  2017/11/29 [18:02]
▲ 정호식 학성고 교사    

전화번호 안내 전화의 안내말인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114 안내가 아니라, 고객을 상대하는 업소에서 또는 일상적으로 쓰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쓰지 않았던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사랑합니다`는 말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는 추세인 것 같다. 백화점 점원도 고객을 향해 `사랑합니다`, 학생과 선생님도 서로 `사랑합니다`, 부모와 자식도 서로 `사랑합니다`, 경찰도 시민들에게 `사랑합니다`, 처음 만나든 여러 번 만나든 만날 때마다 `사랑합니다`라고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 많이 쓸수록 좋기만 한 것일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하다`는 말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다. 「3」남을 이해하고 돕다. [2] 「1」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다. 「2」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다. 다섯 가지 모두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경우에나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면, 과연 좋기만 할까.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란 소설에 오직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아빠와 첫째 딸의 사랑이다. 아빠는 유독 첫째 딸만을 지극히 사랑하여 첫째 딸하고만 유럽 여행을 가고, 여행 중에 딸이 같은 또래의 청년들과 말을 섞는 것조차 싫어한다. 딸도 이러한 아빠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빠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이 둘의 사이에서 관심 밖이 된 다른 가족들은 멀어지고, 아빠와 관련된 일은 모두 딸에게 떠넘기게 된다. 딸은 어른이 되어도 아버지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자 친구와의 교제도 번번이 남자가 먼저 멀어지는 식으로 끝이 난다. 저녁이면 일찍 집에 들어가고, 주말엔 아빠가 정해놓은 전시, 시네마테크에 가는 것이 먼저고, 아버지만큼 수준 높게 잘해 줄 수 있는 남자가 없었고, 남자 친구는 아버지와 이상하게 가까운 여자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둘만 남게 된다. 지식적으로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었던 아빠가 늙어감에 그 옆에 있던 여자들도 떠나버리고, 딸의 주변에도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없어져 버리고 아빠와 관련된 문제들만 남게 된다.


김용옥은 아예 『사랑하지 말자』라고 한다. 사랑해서 좋아지기보다 사랑해서 문제가 더 많다는 것이다. 아무데나 사랑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우리말의 개념지도를 왜곡하고, 그에 따른 감정구조를 왜곡하여 증오, 환멸, 이혼, 자살, 파탄, 살인, 정신질병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부부 간에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수록,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이렇게까지 역설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육체적인 사랑에 탐닉하게 만드는 현대자본주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육욕을 제어하고 도를 구현하는 `성스러운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든 어떤 대상에든 다 써도 좋은 말은 없다. 말은 상황과 대상에 맞게 정확하고 적절하게 써야 좋은 것이다. `사랑하다`는 말도 그렇다.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할 수 없거나, 사랑하지 않아야 되는 대상에는 쓰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것이다. 말이 세밀하게 분화되어 있는 것은 대상이나 상황의 성격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하여 써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것을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에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 것은 관찰력, 사고력, 어휘력의 빈곤과 대상에 대한 무관심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쓸수록 실상은 `사랑하지 않습니다.`를 드러내는 꼴이 된다. 사랑한다는 행위도 그렇다. `오직 두 사람`에서 아빠는 사랑을 하지 않아야 되는 상황이나 시기에도 사랑함으로써 딸의 인생을 망가뜨린 셈이다. 사랑은 그 대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대체로 배타적 소유욕과 관련이 있다. 어떤 물건이나 공간을 사랑하면 나만 갖고 싶어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이 지극하면 나만 아끼고 귀중하게 여겨 주기를 바라고, 직장 동료나 친구 사이도 나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남녀 간에 사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랑함으로써 서로의 자유와 독립을 뺏고 구속과 복종을 강요하게 되고, 불안감과 외로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사는 것도 현실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니, 사랑할 때와 사랑하지 않을 때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살짝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의 관습으로 보면 변태라고도 할 수 있는, `폴리아모르`에 각기 다를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존중과 절제와 자유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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