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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逆轉)
 
박서정 수필가   기사입력  2017/12/07 [16:25]
▲ 박서정 수필가    

덤프트럭 한 대가 동네 아파트 공사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그 뒤를 따르던 나는 그제야 긴 날숨을 내뱉으며 약간의 속도를 냈다. 조금 전과 같은 장애물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몇 미터를 거침없이 통과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풀리는 때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을 붙잡고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쯤 흰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앞에 있는 차가 후진을 하든지 내가 하든지 둘 중에 해야 했다. 후진을 하기에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여유면적을 확인하며 머뭇대고 있는데 그 여자가 창문을 열고 대뜸, "앞 차를 보면 정지하고 있어야지 왜 들어오냐"며 큰 소리로 훈계를 했다. 똑같은 입장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팔까지 내밀며 후진을 종용했다. 내 뒤에는 한 대의 차가 서 있었다. 뒤차도 후진할 생각이 없었다.


여자는 차문을 열고 나와, 바쁜데 이런 일이 생겨 화가 난다는 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주변을 훑다 길에 놓여 있는 화분을 치우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되도록 긴 말은 생략하고 둘이서 이 화분을 저쪽으로 들어 옮기자고 제안했다. 사실 이 말을 하기 전 그 여자의 폭포수 같은 말소리가 거슬려 나도 한 마디 해주긴 했다.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거 아닙니다." 상대방은 나의 일침에 순간적으로 또 화를 내긴 했지만 화분 옮기는 과정을 통해 무마가 되었고 내가 그쪽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그 목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잘못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좀 억울하긴 했지만 그 여자는 분명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소리를 먼저 지를 게 아니라 상황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좋게 수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오해해도 그 여자는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꼬리를 내린 상태였기에 누가 뭐라 해도 역전이 된 셈이었다. 여름을 잘 보내고 있는 풀벌레들이 시냇가 주변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낮에는 시냇물 소리가 풀벌레를 이겼지만 밤에는 풀벌레 소리들이 이기고 있다. 한두 마리의 풀벌레들이 `찌르~ 찌르` 점을 찍는 소리를 내고 있으면 잠자던 벌레들도 합세하여 어느 새 `찌르찌르찌르찌르`로 짧은 선을 그었다. 다른 데로 놀러갔다 돌아온 친구들까지 소리를 모으니 마침내 연결되던 선은 끊어지지 않고 원으로 완성되었다. 완벽한 단결력에 기가 꺾인 시냇물 소리는 움츠러들고 풀벌레소리들은 기세등등했다. 풀벌레 소리는 커지고 시냇물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 여자처럼 시냇물은 풀벌레에게 역전을 당했다.

 

그날 그 여자의 날카로운 소리에 대응해 소리를 계속 내야 했지만 평소 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한 나는 조용히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변에서 나의 편이 돼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그리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이 볼 때 내가 열쇠를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입이 빨리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한 소리를 했지만 썩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상대의 악을 누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것이 통했기에 상대는 순순히 나를 따랐고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우리는 흔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대응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든 그 틀에서 벗어나 선의로 돌아서야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너무 구석으로 몰지 않고 숨통을 틔워줘야 방법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남 탓을 하기 바빴다면 경찰까지 나서는 험한 꼴이 연출되기도 했을 것이다. 화분이라는 매개체를 광장으로 끌어냈기에 관중들은 안도를 할 수 있었다. 한 소리가 다른 소리를 제압하는 것도 어쩌면 필요할 수 있지만 함께 존재하며 빈틈을 주면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어쩌면 더 소리의 값을 끌어올리는 것이 된다. 니 소리는 죽어야 해 하는 소리 살인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역행하는 짓이다. 소리를 칠 때는 치고 아닐 때는 삼키는 소리도 함께 조화를 이뤄나가야 참 소리로 완성되는 것이다. 역전되고 역전 당하는 세상은 우리를 키우는 정신적 성장제지만 화를 키우고 흔적을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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