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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삼도사(農三都四)
 
임일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 경제학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17/12/28 [18:55]
▲ 임일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 경제학부 겸임교수    

퇴직하면 농촌에서 살고 싶은 것은 오랜 꿈이었다. 우리세대가 한국전쟁 총성 속에서 태어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유년을 살았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청소년기를 겪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늘 농촌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운 좋게 얻은 직장 덕분에 동년배들이 퇴직 하고 있던 시기인데도 정년이 아직 몇 년 남아있었다. 덤으로 얻은 은퇴 후 생활을 연습하는 기간이란 생각으로 시골에 작은 텃밭을 준비하고 이사를 했다. 몇 해 전에 정년퇴직한 은사님이 나의 근황을 물었을 때는 "아직은 일주일 중에서 3일은 농촌생활을 즐기고 4일은 도시로 출근합니다,"라고 `농삼도사`라고 자랑삼아 농담한 것이 이름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도사라고 칭하고 보니 마치 導師(도사)님이 된 기분으로 우쭐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그 이름은 한시적이라 퇴직하면 전농거사로 전환된다고 하자 은사님은 그동안 잘 살았기에 `지공거사`만 면할 수 있는 것이라며 농담을 주고 받아주었다. 물론 전농거사나 지공거사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직장을 퇴직하면 일주일 내내 농촌에 살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라는 나의 말과 늙어서 경제적인 능력도, 소일거리도 없어 지하철역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심심하면 공짜지하철 타고 일없이 왔다 갔다 하는 노인들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농담을 한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퇴직이라니. 아직은 청춘이라고, 한창이라고, 이제 모든 업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하철 공짜로 타라는 `어르신 교통카드`까지 받고나니 나도 별 수 없이 노인이라는 생각에 하늘이 노랗다.


소속단체에서 연락이 뜸해서 문의해 보면 "몇 년도 이전 출생자는 재임용에서 제외되었습니다."라는 차가운 대답에 눈물이 빙그르 돌기를 여러 번, 전화조차 겁이 나서 못했다. 젊은 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체념을 하고부터 겨우 평정심을 찾았나 했던 것이 틈도 주지 않고 말로만 듣던 은퇴 후 생활이 시작되어버렸다. 건강하고 경제력이 풍부하다면 고급 취미 생활과 더불어 더위와 추위를 피해 해외의 휴양지에서 여유 있는 여생을 즐길 수도 있으련만, 그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건강 없이 노후를 보내는 것도, 돈 없이 노후를 보내는 것도 어렵기는 하지만 하는 일 없이 노후를 산다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라고 한다. 나는 다행히 현재는 건강하고 부족하지만 최저생활은 할 만큼 소득은 있다.


별다른 취미는 가지지 못했지만 다행히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도우면서 컸기 때문에 운동 겸 취미삼아서 농사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이 꿈이었다. 건강하지 못하면 자의와는 상관없이 요양병원의 신세를 지거나 버려지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내 어머님도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건강하더라도 작은 소득이나마 지속되지 않는다면 지공거사도 어려울 뿐 아니라 최소의 생활비마저 고갈되면 기초노령연금으로 비참하게 연명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농촌생활이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서지 않는다. 아직 농촌 생활에 충분히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일주일 내내 농촌에서만 살아야하다니. 백세 시대에 여생을 농사일에 한정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덜컥 겁부터 난다.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공포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에서 전농거사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텃밭은 소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항상 농사비용은 농사수익보다 높다. 다만 마음에 위안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모든 곳에서 나이 든 나를 환영하지 않지만 농작물은 언제나 환영해준다. 일주일 중 3일은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면서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고,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보면서 조용히 성찰하고 싶다. 일주일 중의 4일은 미래를 대비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인생 이모작에 도전해 보련다. 농삼도사는 나의 이름이 아니라 은퇴 후 생활의 계획서고 인생 이모작의 설계도다. 소망이고, 미래의 삶을 위한 도전이다. 아무쪼록 무탈하여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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