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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김명숙 시인   기사입력  2018/01/14 [15:21]
▲ 김명숙 시인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 하나 생겨난다고 어느 시인이 그러네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난다고. 여기를 떠나 이제 그곳에 있을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봅니다. 죽음은 우선 사라지는 것이지만 사라진 후에도 남은 자들을 오래도록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삶 안에도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 고요한 죽음 안에 과연 삶이 있을지, 세상의 시간과는 상종하지 않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지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사진 한 장 그 자리를 지키며 있었습니다. `생사로는/여기 있으매 두렵고/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한 가지에 나고/가는 곳 모르는구나/아으 미타찰에서 만나볼 나/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신라의 승려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지은 향가입니다. 재를 올릴 때 이 향가를 지어 불렀더니 광풍이 불어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려갔다고 하네요. 한 가지에 났지만 가는 곳은 모른다는 구절에 가슴이 서늘합니다. 


일 년은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날의 절망이나 슬픔은 온 적이 없었다는 듯이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날들은 지나간 모든 날들과 무관한 듯싶게 오고갑니다. 그러나 물이 스미듯 어둠이 내리듯 고여 있던 감정 하나 추슬러 이제 동생을 위한 노래를 불러봅니다. 우린 같은 반죽에서 만들어져 나온 화분 같았으며, 그 화분에 심어진 화초 같았습니다. 물뿌리개로 뿌려지던 물을 함께 받아 마시고, 여름날의 햇볕도 함께 받으면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웠지요. 깔깔거리던 웃음으로, 찡그린 얼굴로, 투닥거리던 손짓으로 금이 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며 우리의 유년은 자리를 잡았지요.
연대기에 실리지 않은 자잘한 이야기의 파편들이 쌓여 큰 무더기를 이루었습니다. 그 무더기는 점점 높아지고 넓어지며 흐뭇한 풍경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벌처럼 찾아온 암이라는 병명. 누구나 그러하듯 믿지 못하겠다고, 아닐 거라고 했지만 냉정한 병명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봄에 싱싱하게 태어났던 이파리가 저 혼자 먼저 낙엽이 되어 이제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잘 넘기기를, 이 한 주 잘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이 시간들이 지난다고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암은 느리고 길었습니다. 몸이 무너져갈수록 암의 세력은 번성했고, 고통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낯선 손님으로 몸 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숨이 서서히 사라지는 동안에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사체 속에서 사흘 동안 살아 있다가 화장될 때 비로소 소멸했습니다. 암은 몸에 기생했지만 인체와는 별도로 독립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각각의 울음은 부딪히고 섞여서 누구의 울음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내 울음이 조카들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남은 식구들이 살아가야 할 날들이 눈물겨웠습니다. 살아온 날들과 거기에 쌓인 추억을 짊어지고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을 건너가야 할 일이 아득해 보였습니다.

 

그 벌판의 가장자리가 뿌옇게 흐려져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행 갈 계획이 있었습니다. 한참 전에 예정된 일이라 미룰 수도 없고, 빠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가면서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 네가 시간을 좀 내어달라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동생은 눈을 감았습니다. 미안함이 오래된 시간의 아쉬움처럼 마음을 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주지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습니다. `다음에 해야지`로 위안하며 내버려두었던 내 행동, 인생에서 다음이란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다음이란 지금은 접근할 수 없는 과거와 마찬가지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할 수 없는 것은 다음이라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이 되면 그건 또다시 접근할 수 없는 다음이지 않을까요. 작년에 정식으로 하지 못했던 이별을 이제야 합니다. 잘 가라 내 동생, time to say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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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4 [15:21]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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