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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도 봄이 온다면
 
김세미 울산 YWCA 시밀레 원장   기사입력  2018/01/31 [15:44]
▲ 김세미 울산 YWCA 시밀레 원장    

한국에 한파가 왔다고 한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제가 올 정도로 올해 들어 유난히 추운 날의 연속이다. 이렇게 2월을 앞두고 추운 날이 지속될 때면, 4~5년 전 만났던 한 내담자가 떠오르곤 한다. 울산이 고향이었던 내담자는 수소문하여 상담소를 찾아왔었다. 앳된 얼굴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들쳐 엎고서 상기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눈물로 토해내는 그녀의 고백은 예상하던 대로였다. 8년 전 유흥주점에서 도망쳐 나와 지금까지 죽은 듯이 숨어 지내야 했다는 것이다. 업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에서 멀고 먼, 경기도 용인까지 올라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아이를 낳아 겨우 새 삶을 살아보나 했다. 소재 파악이 되면 어쩌나 걱정은 됐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혼인, 출생신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어김없이 업주와 소개소 포주들이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이자를 포함한 4천만 원이 넘는 채무를 당장 갚지 않으면 시댁과 남편뿐만 아니라 남편의 회사와 동네에도 내담자가 과거 술집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다 밝힐 것이란 협박과 함께 내담자를 경찰에 사기로 고소했다.


그녀는 지금의 나를 찾아냈다면 그들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올 것이란 두려움, 가정은 파탄 나고 다시 버려질 것이란 두려움,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성매매 현장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이와 함께 동반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소에 찾아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찾아왔다` 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상담자로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당장 모레 경찰서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아야 했는데, 경찰에서 사기 건으로 확정이 나게 되면 이후 불법원인급여로서 지급된 선불금임을 입증할 수 있는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초기 진술을 잘 해야만 했다. 시일을 다투고 있는 문제였기에 내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해당 업소가 위치한 지역의 상담소 등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서류를 만들었다. 경찰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서 천안아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 그날 한국에 한파와 함께 경기도 지역에 폭설이 오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그 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도착한 천안 아산 역에서 다시 수원 역으로, 수원 역에서 내려 다시 용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담자를 만났다. 폭설에 걷기도 추워서 돌아다닐 수도 없었지만 내담자와 함께 진술할 내용을 다시 점검하고, 용인에 있는 한 경찰서로 향했다. 조사에 앞서 내담자의 진술서와 상담소견서, 탄원서 등을 모두 제출했다. 하지만 결국 고소인의 진술과 다르기에 대질심문 기일이 다시 잡혔다. 당사자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다시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들쳐 엎고, 내담자는 8년 전 자신을 학대했던 업주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죽고 싶다`고 표현했지만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음을 몇 번이고 설득했다. 상담원의 동석 하에 조사가 진행되었고, 조사 이후에도 신변의 위협이 우려되어 경찰 동행 하에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용인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건이 종결됐다. 다행히도 사기 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조사과정에서 업주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남으로 추후 민사소송을 제기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사건은 종결됐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업주가 보내온 법원의 소장을 받아보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에는 다시 성매매를 전제로 지급된 불법원인임을 밝히는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성매매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만났지만, 드러나지 않는 성매매의 착취구조에 대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경찰에서도 법원에서도 인정받았던 길고 추웠던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었던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성매매 현장(온라인 등)과 싸워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움이란 걸 할 수 있기는 할까 라는 물음이 들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길고 춥기만 한 성매매 현장에도 봄의 기운이 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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