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감나무 밑에 잎사귀가 쌓이고 있다. 허공이 내어준 길이라고 겹겹 제 몸 벌려 받아내고 있다.
촉촉하게 젖었던 눈가 마르며 바스락거리는 잎들의 신음소리 어둠 밀쳐낸 밤처럼 잎사귀마다 상처로 얼룩져있다.
햇살이 눈동자를 찌를 때마다 안개의상을 벗는다.
시선을 붙잡고 늘어지는 유난히 붉은 감 저물 무렵의 노을처럼 붉은 열매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은 뒷전으로 밀려나오나 보다.
땅의 지붕에 누워 하늘을 본다. 가지에 매달린 허공이 투신한다. 생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것일까? 낙하가 크면 클수록 속 뭉그러져 으스러진다.
가지에 걸어둔 붉은 화인처럼 허공은 늘 빈집으로 남아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계절이다. 그렇게 가을은 어딘가로 맞닿아 있었다.
커보니까 우리가 놀고 자란 학교 운동장이 작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릴 때 눈이 기억한 집과 사물들은 얼마나 넓고 컸던지 지금은 작고 낡은 이미지들로 자리한다. 아버지와 함께 감나무를 심은 뒤란은 나와 함께 컸다는 생각이 문득, 옛집을 찾아온 나를 하염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감꽃 떨어질 때 아버지를 기다리던 밤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슬픔이전의 결핍이며 현실에선 부재하는 그리움이어서 안타깝고 아름다운 결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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