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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02/21 [14:25]
▲ 유서희 수필가   

밟으면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될 것 같은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 바다 빛깔처럼 짙은 파란 색의 하늘이 배경이 되어서일까. 잎의 흔들림은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사무실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 그 많던 잎 떨구는 일이 생의 숙원인양의 날마다 잎 떨구었다. 낙엽 쓸어 모으는 일 지겹도록 잎들 모두 떨구었으나 지금까지도 마지막 잎새로 흔들리고 있다. 그 잎 바라볼 때마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른다. `폐렴에 걸린 존시는 창밖의 담쟁이덩굴의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 생각을 하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다. 그런 친구가 너무나 안타까워 수는 아래 층 베어만 영감에게 하소연을 했고, 걸작을 그리는 데 실패한 화가 베어만 영감 은 존시를 위해 벽에 마지막 잎새를 그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존시는 회복되지만 비를 맞고 그림을 그린 베어만 영감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꺼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기 위한 무명 화가의 숭고한 예술혼이 아름답게 그려진 이 작품은 미국의 단편소설가인 헨리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람 사이의 인정과 애환, 시련에 맞서는 굳센 의지 등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다루고 있다. 지난 해 11월 첫날부터 일을 하게 된 후 힘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글쓰기와 시낭송을 하며 비교적 시간적 자유로움 속에서 생활하던 나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출근해서 회사의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봄직한 업무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지치고 힘겨워 겨울을 더욱 시리게 했다. 우연한 기회에 교육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들을 통해 나의 미래에 대한 비젼을 보게 되었고 그 분들과의 만남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 뜻이 맞아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함께 일할 생각을 하니 의욕이 충만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2017년의 겨울, 그처럼 봄을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있었던가. 4개월여 동안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가던 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 준 것은 다름 아닌 나뭇잎들이었다. 사무실 앞에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나란히 잎을 피우며 자리잡고 있다. 처음 그 나무들을 만났을 때 고운 빛깔로 한창 잎을 물들이고 있었다. 여름날의 생기를 담은 연둣빛 잎이었다가 노오란 빛깔로 한 잎 두 잎 물들어 가는 모습과 계절의 흐름 속에 물기를 잃어가는 메말라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겨울을 맞이하였다. 계절 앞에선 나뭇잎도 어쩔 수 없이 잎을 떨구었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밤사이 낙엽눈밭을 만들어 환호성 지르게 했다. 출근길에 햇살을 받으며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는 낙엽의 선물을 받으면 어제의 피로는 모두 잊고 에너지 충만한 하루를 열게 해 주었다. 오후가 되면 황금빛 햇살을 품고 사그락 사그락 거리며 겨울풍경을 피워내는 나뭇잎은 낯설고 힘든 길 가는 고단함을 잊게 해 주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느티나무 풍경은 낯선 길을 가는 고단함과 힘겨움으로 움츠린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지자 그 행복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바람에 흔들려도 하늘 한조각 보이지 않을 만큼 수 천 개의 잎으로 숲을 이루더니 계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겨울의 세찬 바람엔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렇게 많았던 나뭇잎 매일 후두둑 잎을 떨구었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게 되자 하늘은 품을 넓게 펼치며 짙게 내려 왔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저물면 하늘빛은 나뭇가지를 더욱 검푸르게 했고 가지에 몇 남은 나뭇잎은 더욱 쓸쓸하게 흔들렸다. 2월이 되자 나뭇가지는 물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지마다 생기를 돌게 하고 새들은 봄이 오는 소리를 노래한다. 잎망울 몽글어가는 느티나무의 가지 끝에서도 봄은 피어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마지막 잎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느티나무의 마지막 잎새는 혹독했던 겨울을 견뎌 내고 환한 미소 지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베어먼 영감이 나를 위해 그려 놓은 잎그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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