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붕어빵철학
 
최영주 수필가   기사입력  2018/02/22 [18:19]
▲ 최영주 수필가    

설 명절 전 독감에 걸려 한 달 동안 애를 먹었다. 독감은 도저히 회복되지 않은 채 온통 입맛이 떨어져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나머지 집 앞 슈퍼마켓 옆에 기대어 조그맣게 비닐을 둘러 최소한의 공간 안에서 굽고 있던 붕어빵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이 사다준 붕어빵을 머리 부분부터 베어 물었는데 팥소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또 한 번 베어서 아가미쯤을 지났는데도 팥소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팥소는 몸통의 중간 부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붕어빵의 핵심은 팥소가 아니던가. 붕어빵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팥소를 넣어 주면 좋겠다고 남편이 내 부탁을 전했다. 3마리 천 원 하는 것을 2마리를 줘도 되겠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40대의 붕어빵 굽는 여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신의 영업방침을 바꿀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더라는 것이다. 언제나 기억 속에 있는 붕어빵 아저씨가 떠올랐다. 1957년 초등학교 1학년이던 일곱 살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 십 환을 받아 붕어빵을 사먹었다. 크고 둥근 통 안에 걸쳐져 있는 기계를 돌려 뚜껑을 열면 연한 갈색으로 통통하게 구워진 붕어빵이 두 마리씩 들어 있는 것이 신기해서 더욱 사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붕어빵 아저씨는 여름 한 철을 제외하곤 나와서 붕어빵을 구웠다. 십 환에 5마리를 주는 붕어빵은 고소하고 맛있었다. 부산대학병원 옆 담을 따라 판자로 가건물을 지은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붕어빵 굽는 데가 두 곳 더 있었지만 내가 항상 가는 붕어빵 가게 아저씨는 팥소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넣어 주었다. 그래서 제일 맛있었다. 과자나 사탕 등을 사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붕어빵을 사먹는 편이었다. 그해 봄 내내 붕어빵을 사먹고 가을이 시작되며 다시 나온 아저씨한테 또 사먹기 시작했다. 가을의 어느 날 아저씨는 나에게만 붕어빵을 6마리를 주었다. 웬일인가 하여 내가 눈이 동그래지자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얌전이가 제일 단골이니까." 했다. 십 환을 내밀고 붕어빵이 구워져서 나올 때까지 말없이 서 있는 나를 아저씨는 얌전이라고 불렀다. 나는 붕어빵봉지를 가슴에 끌어안고 집에 와서 식구들한테 온통 자랑을 해댔다. 어디를 가든 어머니 손을 잡고 이끌려 다니는 꼬마인 나를 오롯이 단골손님 대우를 해준 붕어빵 아저씨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붕어빵 가게에서 나 외에 붕어빵 6마리를 받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여덟 명이나 되는 우리 옆집 아줌마는 붕어빵을 팔십 환 어치씩 사야 했다.

 

붕어빵을 살 때면 아줌마는 내게 붕어빵을 좀 사달라고 상냥하게 부탁하곤 했다. 나는 그토록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일곱 살짜리인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독립적 개체인 온전한 나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외출에서 돌아오다 붕어빵을 사게 되었다. 내 어머니를 처음 보게 된 아저씨는 얌전이 어머니이시냐며 인사를 했다. 붕어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아저씨는 얘기를 나누었다. 붕어빵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회사의 과장, 부장 월급은 부럽지 않다고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내게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붕어빵엔 철학을 담아야 하는 거야. 붕어빵은 팥소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넣어야 돼. 그래야 붕어빵이 맛있어. 그게 붕어빵의 철학이지." 붕어빵에 팥소가 가득 들어있으므로 나도 아저씨의 붕어빵을 열심히 사먹는데 그게 철학이라니, 철학이 뭔가, 생각하며 서 있는 내게 아저씨는 당부했다. "팥소를 이렇게 넣어도 아저씨는 이익을 남기고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엔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하는 거야. 얌전아, 철학을 기억해라." "예-" 나는 붕어빵을 6마리씩 주는 사람 좋은 아저씨가 하는 얘기이므로 얼른 대답했다. 30대 후반의 젊은 아저씨는 얼굴 생김도 반듯했다.

 

좀체 낫지 않는 독감으로 병원에 다녀오던 길에 남편한테 잠시 차를 멈추게 하고 붕어빵 가게 앞에 내렸다. "아줌마, 붕어빵엔 붕어빵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댔어요." 하며 붕어빵을 굽는 여인에게 그 옛날 붕어빵 아저씨의 철학을 전하기로 했다. 여인은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날 사러간 붕어빵엔 팥소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들어 있었다. 듬뿍 든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 후의 가난하고 질서도 확립되지 않던 그 시절, 아저씨는 어린 나를 단골 대우 같은 건 생략해도 되었을 터인데 굳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 주었다. 길가에 나앉아 종일 먼지를 마시며 붕어빵을 구우면서도 양심과 상도덕을 담은 철학을 내게 얘기해준 아저씨이다. 60년이 지나고 사회는 이만큼 발전되었는데도 붕어빵에 담아내던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이 이토록 간절해진다. 우리 동네 여인이 구워낸 붕어빵철학을 한입 가득 베어 문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02/22 [18:19]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