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의 쇼핑몰 화재로 어린이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최근 재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저녁 모스크바 크렘린 궁 인근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희생자 추모식이 진행됐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추모식에 참여를 원하지 않는 수백명의 모스크바 시민들이 푸시킨 광장에 따로 모였다.

푸시킨 광장에 모인 이들은 양초를 태우고 헌화하며 슬픔을 표하는 한편 "푸틴 없는 러시아" "부패를 죽이자" "언론의 수치" "침묵에는 죽음 뿐"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화재의 진정한 원인은 국가의 부패와 무능력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화재가 발생한 쇼핑몰이 있는 케메로보를 방문해 태만과 부주의를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NYT는 "러시아는 엄격한 건설 및 안전 규정을 세우고 있지만 부패한 공무원들이 뇌물 등의 대가를 받고 규정 위반을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감시해야할 사법 당국 역시 정치권의 압박에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국제 소방구조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에서 화재로 사망한 사람은 10만명 중 7.5명이다. 미국이 1명, 카자흐스탄이 2.7명, 프랑스와 독일이 0.5명을 기록한 가운데 조사 대상에 포함된 41개국 중 최악의 수치다.

안톤 고렐킨 케메로보 주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비극의 진정한 원인은 어린이들의 장난과 합선이 아닌 탐욕"이라며 "사고가 발생한 쇼핑몰은 개장허가를 받아서는 안 됐다"고 밝혔다. 그는 2013년 쇼핑몰 개장을 허락한 부시장을 비판하며 "그의 눈이 돈으로 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으로 아내와 세 아이, 여동생까지 잃은 이고르 보스트리코프는 SNS에 "나는 더이상 가족이 없다"며 "지배 체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관료는 푸틴처럼 돈을 빼돌릴 꿈을 갖고 있고 모든 주 공무원은 국민을 쓰레기처럼 취급한다"며 "정부에서 나온 조사관은 어떤 희생양을 찾아 이 사건을 마무리하겠지만 무능력과 광범위한 부패 같은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는 근본적 원인은 전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사고 발생 현장을 찾은 당시에도 케메로보 중앙광장에 시민 수천명이 모여 당국이 사망자 수를 은폐하고 있다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과 아만 툴레예프 케메로보 주지사는 시위 현장에 방문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 지원을 받는 언론이 영국 내 러시아 스파이 출신 망명자 암살 사건으로 인한 외교 고립을 들어 대내 통합을 강조하는 한편 시위는 외면하고 사건 현장을 방문해 조의를 표하는 푸틴 대통령의 모습만 보도해 논란을 증폭하고 있다.

전직 정부관리 출신 칼로이 아힐코프 변호사는 트위터에 "공식 사망자 수가 사실이라고 해도 국민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를 믿을 수 없게 됐다"며 "정부는 이같은 뿌리깊은 불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