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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04/22 [14:37]
▲ 유서희 수필가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떠나온 경주.   보문호수에서 어둠과 친구 되어 한참을 앉아 있다. 이런 순간 가슴 따뜻한 친구가 있어 보낸다. 집에 오니 책상 위에 엽서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눈에 익은 글씨다. 손글씨가 귀해진 요즘 유일하게 손 글씨로 엽서를 보내오는 그녀다. 표지엔 흰색으로 인쇄된 `경주 보문정`이라는 글씨와 호수 속에 맑게 투영된 보문정 모습이 담겨져 있다. 목화송이 같이 몽글 몽글하게 핀 벚꽃의 가지는 호수를 향해 고개를 내리고 있다. 하늘 가까이 서 있는 미루나무와 흰구름 풀어 놓은 하늘을 담은 호수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녀는 여행을 자주 간다. 그럴 때마다 그 곳 여행지에서 엽서를 적어 보내 온다. 언젠가 한 번은 외국에서 그녀가 보내 온 듯한 엽서가 도착해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이역만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떠 올려 주고 마음이 담긴 엽서를 보내 주다니, 그 기쁨과 설레임이 훨씬 더 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엽서는 국내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그 곳에서 보내기엔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많아 엽서만 구입한 채 국내에 와서 엽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현지에서의 생동감과 기쁨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담긴 글임에는 틀림이 없었기에 그 고마움은 아직도 깊이 간직되어 있다.


 그녀와 나는 가족 같은 사이다. 그녀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이 친구였고,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부터 지금까지 같은 울산에서 살고 있으니 인연이라면 둘도 없는 인연이다. 서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할 때는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와는 틈나는 대로 만나고 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낸다 해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성격이면 자주 볼 일도 없겠지만 잠시의 시간이 생기면 서로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연락이 통하여 만난다. 음식을 먹을 때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힐링 그 자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이지` 만나면 입버릇처럼 내 뱉는 말이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말을 뱉고 나면 까르르 산골짜기 흐르는 물소리 같은 웃음을 한바탕 쏟아 낸다. 식사 값을 계산하거나 커피값을 계산할 때도 복잡 미묘한 고무줄놀이가 없다. 초록의 흔들림에도 서로의 느낌을 알아듣고 같이 고개를 끄덕여 주고, 사진을 찍느라 풍경에 정신을 빼앗긴 채 긴 시간이 흘러도 침묵으로 말없이 기다려 주는 친구.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그런 친구. 그 사람을 가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세월의 흔적이 자리 잡아가는 인생길에 서로의 주름을 세어 가며 그 길 함께 나란히 걸어갈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다. 그녀와 내가 오늘의 지란지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순수하고 맑았던 학창시절에 주고받았던 쪽지편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그녀는 수업시간에 쪽지편지를 써서 셔츠 모양으로 종이를 접어 쉬는 시간에 급히 나에게 전해 주고 가곤하였다. 그러면 나도 다음 수업시간동안 답장을 써서 학의 모양으로 접어 전해주곤 하였다. 나는 그 때의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가끔 그 편지들을 펼쳐 내어 읽어 볼 때면 학창시절의 그 순수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살아갈수록 가족도 친구도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사람과의 마주보기보다 감정 없는 기계와 마주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사늘한 콘크리트 같은 사람과의 거리감 속에서 그녀와의 지란지교를 나눌 수 있는 이 봄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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