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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을 국물부터 들이켜던 시절
 
최영주 수필가   기사입력  2018/04/26 [15:45]
▲ 최영주 수필가    

소리를 내면 죽음이다. 소리를 내는 순간 벼락같이 들이닥친 괴물의 공격을 받고 죽음에 이른다. 가족 간의 모든 대화는 수화로 소통하고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맨발로 생활한다. 영화는 침묵의 화면 속에서 극한의 공포가 전개되고 있다. 사람이 소리를 내지 못하며 살아야 하는 고통과 소리 앞의 극심한 두려움을 어떻게 견디며 타개해 나가는가 하고 관객은 몰입해 있다. 관객이 많지는 않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종류의 영화는 영화 마니아들이 보는 편이다. 그들은 테이크아웃 커피 정도 들고 와서 한 모금씩 마시며 영화에 집중한다. 그 어느 때보다 영화관 안은 조용하다. 나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벽 쪽 좌석에 앉은 여고생 둘은 끊임없이 팝콘 먹는 소리를 낸다. 영화 시작 부분에선 저희들끼리 나누는 얘기 소리도 들리더니 객석이 워낙 잠잠해서인지 말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차분히 영화를 보는 것 같더니 점점 따분한 느낌이 드는지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며 부스럭댄다. 화면과 관객들은 고요한데 두 여학생이 내는 소리가 계속된다. 지겨운 책상 앞을 떠나 대형 크기의 팝콘과 음료수를 들고 영화를 보러 온 것만으로도 들뜨고 즐거울 것이다. 학생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팝콘을 먹고 음료수를 마신다. 쉼 없이 먹고도 또 먹고 싶은 나이가 아닌가.


여고 시절의 친구가 생각난다. 여름방학 동안 친구와 학교의 빈 교실에 가서 공부를 하곤 했다. 점심때가 되어 학교 앞 분식점에 가면 친구의 우동 먹는 방법이 남달랐다. 우동을 먹을 때, 허기가 천천히 찾아오도록 먹는 방법을 알아냈다며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듯 진지하게 말했다. 평상시에 먹는 대로 면과 국물을 함께 먹으면 우동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금방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었다. 다음 방법은 면을 먼저 건져 먹은 뒤에 국물을 다 마시면 조금 더 늦게 시장기가 돈다고 했다. 나머지 방법은 제일 맛없게 먹는 방식이지만 국물부터 다 들이켜고 난 후에 면을 먹으면 그 중 배고픔이 더디게 온다며 대단한 발견을 전해주듯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언제 그렇게 굉장한 것을 연구했냐며 깔깔대고 웃었다. 내가 웃고 있는 사이에 친구는 벌써 우동의 국물부터 들이켜고 있었다. 우동을 가장 맛없게 먹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고파지는 시간을 늘어지게 하기 위해서. 그때는 먹고 또 먹어도 왜 그토록 자주 배가 고프던지.


학교 앞 분식점엔 학생용 자장면이 있었다. 중국음식점의 자장면 값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학생들이 사먹는 자장면이었다. 수업을 하고 난 뒤의 출출함을 안고 친구들과 어울려 먹어서인가. 부모님이 사주지 않으면 잘 먹을 수 없는 중국음식점의 자장면보다 분식점에서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 주는 자장면이 더 맛있었다. 3학년 즈음엔 토요일을 위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용돈을 모았다. 두꺼운 책갈피에 한 푼 두 푼 아끼고 아낀 지폐를 펴서 넣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점에 모여 앉아 저마다 한 주일 동안 모은 용돈들을 한데 모았다. 조금 더 모아온 친구, 조금밖에 못 가져온 친구, 들쑥날쑥해도 그날의 금액에 맞추어 음식을 주문하면 되었다. 학생용 자장면에 오징어튀김 등을 곁들여 먹고 설탕 발린 도넛을 디저트로 먹노라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즐거운 토요일의 파티였다. 오나가나 입시공부에 시달리던 우리에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참 잘 먹고 잘 삭이던 나이였다.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에 신바람나서 뭘 많이 먹었는지 상영 중에 아무도 가지 않는 화장실을 학생들은 폴짝거리며 사이좋게 다녀온다. 영화가 끝 부분에 이르고 있는데도 팝콘이 아직 남았나 보다. 팝콘 집어먹는 소리가 여전하다. 조금 남은 음료수를 빨대로 먹는 소리가 꾸르륵 크게 들린다. 꾸르륵 꾸르륵 연신 계속된다. 주위에 방해가 되지 않게 컵 뚜껑을 열고 마시면 될 터인데 빨대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영화관에선 가능하면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빨대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얘기해 줄까 하다 잔소리로 들릴 것 같아 그만 둔다. 일요일 오후의 휴식 분위기를 깨뜨려 주고 싶지 않다. 이제 곧 숙녀가 되고 앞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될 소녀들이 아닌가. 그들 앞엔 끝없이 펼쳐진, 스스로 깨닫게 될 시간들이 있다. 어느새 소소한 일상사에도 물리가 트이지 않고 철모르던 우리들의 그 시절 속에 학생들이 퐁당거리며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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