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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Leader)의 물 한잔
 
김재범 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18/04/26 [15:47]
▲ 김재범 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대표    

지난 주말 봄이 실종된 듯 따뜻한 날씨를 보이더니, 연이틀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순간 몸이 으슬으슬해짐을 느낀다. 그래도 이 빗줄기가 그치고 나면 주변의 산과 들은 완연하게 신록의 빛깔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이렇듯 무위자연은 스스로를 뜨겁게 재촉하기도 하고 별안간 발걸음을 쉬어가게 만드는 마술을 유연하게 잘도 부린다. 세상사도 맑은 날엔 모든 것이 순항할 것만 같던 일들이, 한 줄금 빗줄기라도 세차게 뿌릴라치면 시계(視界)가 한치 앞도 분간 할 수 없는 시운(時運)으로 바뀌곤 한다. 옛 속담에 `삼대 가는 부자 없고, 삼대 가는 거지 없다`는 말이 그 짝이다. 요즘 재벌 오너 일가의 갑질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그동안 한 대기업 삼남매의 기행(奇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누적되어왔다. 갑질의 결정판은 셋째 딸이 주인공이다. 그는 업무 중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협력사 직원을 향해 물 잔을 집어 던진 일이 바깥으로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이 재 점화됐다. `미생`들 이라면 누구나 와신상담(臥薪嘗膽)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온갖 괴로운 상황을 견디어낸 경험들이 있을 법하다. 그래선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물 한잔`은 가장 얻기 쉽고 값나가지 않는 물질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풍속(風俗)엔 물 한잔으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의미 있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선뜻 물 한잔을 내어줘 인심을 크게 얻기도 하지만, 울컥 찬물을 끼얹어 모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유명한 황순원의 소설 제목으로 등장하는 `물 한 모금`은 훈훈한 인심과 감동으로 새겨져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어느 가을날 오후, 갑작스레 내린 비를 피하면서 벌어지는 일로 시작된다. 평안도 시골 간이역 근처 초가집 헛간으로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은 비가 오는데도 초가집으로 가는 외나무다리를 천천히 건너고, 당꼬즈봉 차림 청년은 그런 노인의 걸음을 재촉한다. 먼저 헛간에 모인 사람들 표정은 미끄러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휘청대는 모습을 보며 걱정과 순박한 웃음이 반반 묻어난다. 각자 목적지가 다른 이들이 비 오는 날 헛간 처마 밑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험악한 인상의 중국인 집주인이 나와 헛간에 모여든 사람들을 훑어보고 되돌아간다. 순간 냉랭하게 느껴지는 집주인의 태도에 사람들은 장대비가 내리는 와중에 쫓겨나기라도 할까 봐 긴장하는 눈빛이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집주인은 비를 피하러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따뜻한 물 한 잔씩을 건넨다.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집주인의 배려에 사람들은 감동을 먹는다. 조금 전까지 조금은 경계하고 낯설어 하던 사람들은 집주인이 나눠준 물 한 모금으로 몸과 마음의 경계를 녹이고 각자의 길로 떠날 채비를 한다." 이 소설은 물 한 모금의 작은 나눔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위로를 정겹게 그려내며, 마치 물 한잔의 미학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흔히 조직의 우두머리나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을 `리더(Leader)`라 부른다. 테드(TED) 동영상 강의로 유명한 `사이먼 사이넥`은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에서 "우리는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리더라 부르지 않는다. 나아가 그들은 통치자나 지배자 일 뿐이다." 그가 설명하는 리더의 모델은 미 해병대에서 신임 병사가 먼저 먹고 최상급자는 가장 나중에 배식을 받는 병영 문화를 들려준다. "자신보다 동료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사람, 우리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 그 결과로 조직의 역량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14~16세기 유럽에선 신이 주체가 되던 사회에서 인간중심의 사회로 변화를 꾀한다. 신을 모델로 삼던 모든 예술의 대상이 평범한 사람들로 바뀐다. 대개 신을 대신한 이들은 힘과 돈을 가진 권력자나 심지어 하층민 여성의 나신이 작품의 전면에 등장한다. 당장은 기득권이 쏟아내는 혹평과 거부감으로, 화가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우리는 그때를 르네상스시대라 이름하고, 문화부흥기라 말하고 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르네상스식 미래사회는 개인 한사람 한 사람의 상상력이 기술, 문화, 산업과 만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것이라 한다. 높아진 개인의 역량을 바탕으로 기득권사회 갑질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일지 모른다. 오늘날 개인은 미래사회 주체자로 진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르네상스시대 시작과 완성을 앞당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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