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람이 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연일 보도되는 황사와 미세 먼지 비상으로 인해 따뜻한 봄바람을 느낄 여유도 없이 창문을 닫기 바쁘다.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성매매피해자들을 만나고 보호하는 일들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이 성매매 분야라는 곳에서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 때문에 매번 처음 하는 일처럼 피해자들을 만나야만 하기도 했고,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과 시민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와 같은 성매매방지기관이 해야 하는 사업과 목적은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듯이 분명하다. 그 일들을 고스란히 해내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한 인격적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직업`이 아니라 `직업봉사` 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쉼터 선생님들이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것보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요.` 10년째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담원의 고백이다.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목적사업을 위한 많은 행정 서류들과 눈에 띄게 보일만한 성과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대로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상생활과 일상적인 관계,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가정 안에서, 사회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배워간다. 그래서 때로는 단호하게 지도를 해야 하고, 때로는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서툴지만,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쉼터에 와서 지내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툭툭 내뱉는 고민들이 있다.
`선생님, 제가 지금은 너무 좋고 마음이 편한데..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까봐 너무 무서워요.` 아마도 그들은 평생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한 번의 성매매의 경험이 다른 일을 견딜힘을 앗아갔다. 그리고 성매매 현장 가운데 머물게 만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 날도 황사와 미세먼지 지수가 높아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를 보고서, 문득 올라간 옥상에서- 나는 홀로 울고 있던 아이 옆에 앉아, 한참을 있다 내려왔다. 아이는 울고, 나는 말없이 그냥 곁에 있는다. 이 아이들에게 이제 필요한 건, 수만가지의 좋은 말보다 순간순간 차오르는 상처의 기억과 외로움에 눈물을 쏟아낼 때 그저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에, 상처 속에 고통스러워 할 때 그런 너를 이용하고 윽박지르는 누군가가 아닌- 믿을만한 누군가가 그저 옆에 있었다는 것이 어느 날 그들에게 문득, 삶의 잔잔한 위로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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