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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견디는 법 하나
 
김명숙 시인   기사입력  2018/05/09 [18:59]

 

▲ 김명숙 시인     © 편집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벚꽃 엔딩`의 음률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소리와 꽃잎들이 서로 얽혀 키득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노래와 함께하는 산책길, 옆으로 흐르는 강에선 물의 주름 사이로 빛인 듯 물고기가 뛰어오르기도 하고, 자잘한 봄꽃들이 제각각의 넓이만큼 색들을 흔들어 깨운다. 바람이 머물다 가는 나뭇가지는 이미 연두의 계열을 벗어났지만 노래는 미처 맞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린 봄을 붙잡아 계절을 느끼게 해준다. 해 떨어지기 직전 그림자가 섞이는 순간에 듣는 노래는 귓속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한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우러나게 하여 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노래를 듣느냐에 따라 봄의 색깔도 달라 보인다. `벚꽃 엔딩`엔 아지랑이 되어 뛰어다니는 산뜻한 봄이 있고, `봄날은 간다`엔 가슴 아리고 눈물 나는 봄이 있고, `봄비`엔 경쾌하면서도 나른한 봄이 있다. 만약 이 세상에 노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더 삭막하고 심심하지 않았을까. 기쁜 일은 더 기쁘게 하고, 슬픈 일은 덜 슬프게 하는 게 노래이니까 말이다.노래는 `놀다(遊)`라는 동사에 명사화된 접미사 `애`가 붙어서 `놀애`, 즉 노래가 됐다는 말이 있다. 호모 루덴스의 후예인 우리는 노래 부르며 힘든 노동과 무료한 일상을 견뎌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오락적, 유희적 기능뿐만 아니라 슬플 때 우울한 노래를 듣듯이 노래는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카타르시스의 기능도 있는 것 같다.  


나에게 하나의 노래를 듣는 것은 한 시절로의 진입이다. 마주치면 항상 두 손을 들어 환영해주는 과거로의 여행 같다. 짐을 꾸리고, 티켓을 구매하고 다시 만나게 될, 혹은 새롭게 만나게 될 풍경에게로 향하는 일과 같다. 하나의 사건이 노래로 불려 지면 그 장소나 이야기는 나에게 겹쳐지면서 달콤하거나 쌉쌀하거나 비애나 혹은 부드러움으로 다가온다. 주머니 속에 감춰둔 사탕을 꺼내 먹듯 추억을 살금살금 꺼내 먹으며 그 시공간에 다시 서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내 소유의 휴대용 오디오를 장만하여 처음으로 샀던 LP가 트윈 폴리오의 것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들었던지 스크래치 때문에 2장이나 더 샀었다. 그 후 용돈의 대부분은 LP를 사는데 쓰였고, 늦도록 계속되던 음악소리는 꾸지람의 대상이 되었지만 참 열심히도 들었었다. 영어 공부를 한다는 근사한 이유도 붙여서 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듣고는 연주를 하고 싶어 기타를 배웠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갈색의 대학 노트에는 몇 밤의 고단함과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 올리던 그 바람의 기척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완성하긴 했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고, 훗날 읽어보니 너무 유치찬란했다는 이야기이다. 대학 입학 직전 봤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나왔던 `고래 사냥`은 대학 시절 내내 우리를 어딘가로 떠나게 만들었다. 자, 떠나자면서 경전선 밤기차를 타고 새벽의 목포에 내리기도 하고, 설해목을 보러 강원도로 가기도 하고, 비둘기호 완행으로 느닷없이 소설 속의 청량리에 닿기도 했다.


새벽 5시, 역 앞에서 먹었던 국밥이 우리를 얼마나 다정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유달산에 올라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난 뒤 서로를 보며 얼마나 웃어댔는지 지금도 선하다. 왜 어떤 종류의 과거들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솟아나는 것일까? 결국 이때의 무작정 떠남은 하나의 버릇으로 남아 지금도 떠나기를 즐기게 되었다. 또한 노래는 비루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오겠지` 이 노래를 들으며 혹은 부르며 흘렸던 눈물. 가끔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또 가끔은 푸름으로 빛나기도 하며 점점 뚜렷한 무늬가 되어 수다스럽게 뒤척이고 있는 노래들. 이들마다에는 오직 그것들만이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사연들과 사물들과 세계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래마다 가지고 있는 결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불러내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저기 부락을 만들어 숨어 있던 풍경과 이야기들이 지금 아우성을 지르며 나오겠다고 법석이다.

 

노래가 있어서 봄꽃은 더 아름다웠을 것이고, 여름은 더 신났을 것이고, 가을은 덜 외로웠을 것이고, 겨울은 덜 추웠을 것이다. 나의 산문적 삶에서 노래는 음표를 그려 넣어 풍경이 되고 빛이 되고 그늘이 되고 종내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곁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견딘다고. 아니 이 말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운다고. 지금의 시간과 공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고. 그러면서 시간을 견딘다고. 가만히 못 있고 언제라도 날아가 버리려는 기억을 붙잡으며 나 역시 그렇게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 음악과 함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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