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신권(新卷) 발행 신중해야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기사입력  2018/05/13 [16:54]
▲ 정문재뉴시스 부국장    

인류는 고대 수메르에 많은 빚을 졌다. 수메르는 BC 3000년께 찬란한 문명을 일궜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농경사회를 건설했다. 수메르인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대형 토목공사를 되풀이했다. 토목공사는 과학을 요구한다. 도량형이 없으면 과학은 존립할 수 없다. 수메르인들은 길이나 무게를 가늠키 위해 독창적인 도량형을 개발했다. 현대인들도 수메르식 도량형을 답습하고 있다. `1다스`나 `하루 24시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수메르인들은 화폐도 만들었다. 수메르는 통화 단위로 셰켈(shekel)을 사용했다. 이스라엘도 현재 셰켈을 통화 단위로 이용한다. 은화(銀貨)를 셀 때 셰켈을 썼다. 셰켈은 실제 거래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회계상의 개념으로만 활용됐다. 실제 거래에서는 셰켈 대신 보리를 사용했다.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다. 은화 1셰켈은 보리 1부셸(30.3리터)에 해당된다. 관리들이 주로 국가재정을 관리하면서 셰켈을 이용했다. 화폐의 3대 기능은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저장수단이다. 셰켈은 주로 계산단위로 쓰인 반면 보리는 교환수단으로 활용된 셈이다. 평범한 백성은 은화를 구경할 일이 없었다. 은화는 대부분 왕궁이나 사원의 금고에 보관됐다. 물건의 값을 은화로 계산하지만 실제로 은화를 주고 받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적 거래는 주로 외상으로 이뤄졌다. 평소에 빵을 외상으로 사먹다가 추수철이 되면 보리로 갚는 식이었다. 보리와 함께 염소 등도 보완적 화폐로 사용됐다. 셰켈은 그저 거래금액을 표시하는 수단에 그쳤다. 


화폐가치의 안정을 위해 은화와 보리 간의 교환비율은 엄수했다. 땅값이나 세금을 셰켈로 계산하고, 보리나 염소를 넘겨줬다. 이런 결제 관행은 고대 그리스는 물론 중세 시대까지 이어진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배나 갑옷의 가치를 나타날 때 주로 `소`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배 한 척의 가치는 `소 30마리`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소가 보편적 재화로서 상당한 재산가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 계산 단위도 늘어나고, 복잡해진다. 소의 가치를 매기면서 암수, 나이 등을 기준으로 가격을 세분화하기도 했다. 고대 아일랜드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소는 물론 처녀 노예를 화폐단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녀 노예는 소보다도 훨씬 높은 화폐단위였다.


아이슬랜드에서는 20세 전후의 처녀 노예가 가장 높은 통화 단위였다. 이는 유럽뿐만이 아니다. 인도에서도 그랬다. 고대 인도의 종교 경전 `리그 베다(Rig Veda)`도 금(金), 소와 함께 처녀 노예를 통화 단위로 꼽았다. 처녀 노예를 화폐로 사용한 것은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다. 보통 인구가 적고, 농사를 지을 땅이 비교적 넉넉하면 처녀 노예의 가치도 높아진다. 인구 증식을 위해 건강한 젊은 여성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랑은 신부 집에 처녀 노예 1명의 가치에 상당하는 재산을 넘겨줘야 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도 사람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처녀 노예보다도 높은 화폐 단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가 진행될 때마다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란이 불거진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제기한 후 해마다 갑론을박이 되풀이된다. 현재의 화폐단위가 경제 규모가 확대된 것을 제대로 반영치 못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거래 단위가 크다 보니 상당한 불편이 따른다.

 

 

금융시장에서는 조(兆)로는 부족해 `경(京)`이라는 단위까지 사용한다. 젊은 층은 실생활에서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천하고 있다. 일부 대학가 카페에서는 아예 메뉴판에 1000원을 `1.0`으로 표시해 놓기도 한다. 네 자릿수를 일일이 적어놓는 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이 지하경제 양성화, 내수 활성화 기여 등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인프라 교체를 통한 내수활성화 기여 효과를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 신권 발행 비용이나 새로운 화폐 도입 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감내해야 할 혼란도 무시할 수 없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05/13 [16:54]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