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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클럽
 
강이숙 시인   기사입력  2018/05/20 [18:03]

 

▲ 강이숙시인    

어디 내 놓아도 손색없는 주당들이 있다. 여자들로 맺어졌지만 웬만한 남자 무리들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주량을 과시한다. 그런 주당의 특별 모임이 있는 날이다. 우리의 아지트인 동네 단골호프집 신장개업 날인데 일찌감치 한 달 전부터 날짜를 미리 잡아 두었었다. 날이 날이니 만큼 홀은 북새통이었지만 우리는 VIP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아 안쪽 조용한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어디까지 달릴 것인가? 마늘치킨을 선두로 해서 안동찜닭, 소라초무침, 어묵 탕 등 미리 예약해 놓았던 안주들이 줄줄이 들어 왔다. 주거니 받거니 술 타임은 시작되고 누가 뒤질세라 각자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다. 20여년을 함께 한 인연은 잘 익은 술만큼이나 무르익었다. 면면들은 일사분란하게 단합을 과시한다. 리더 격인 J는 이름에 걸맞게 정열적이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앞장서 주선하고 회원들에게 연락해 참여를 독려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열일 젖혀 놓고 응하기에 바쁘다. 백합이란 닉네임을 갖고 있는 O는 그것 못지않게 하얀 얼굴에 백합처럼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 외모와 달리 소주, 맥주, 막걸리 가리지 않고 호탕하게 마셔대는 그녀를 우리는 전천후 술 쟁이라 부른다. 먹성이 좋아 안주마저도 온갖 것 주문을 다해서 상다리가 부러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다. 늘 든든한 지원군인 부군을 모시고 나오는데 연약한 여자들의 보디가드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우리는 그를 오라버니라 칭하며 깍듯이 모신다.

 

술도 드시지 않고 끝까지 앉아 우리의 넋두리나 고민들을 잘 들어주고 누이동생처럼 다정히 대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Z는 언니들의 자질구레한 시중도 곧잘 들어주고 애교 만점으로 분위기를 즐겁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한동안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다. 그 여파로 술자리를 함께 할 수 없어서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지금은 다행히 치료가 잘되고 경과가 좋아 다시 합류하게 되어 기쁘다. `첫째 잔은 예요, 둘째 잔은 정이며, 세 번째는 사교로서 가하니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천하에 술만 한 것이 있을까`라는 <술이 주는 지혜>를 진즉에 터득한 우리들로서는 한번 자리를 마련하면 2차까지 끝장을 보곤 했다. 그동안 먹은 술값은 집 한 채를 족히 사고도 남았을 액수였다. 한 번은 나의 직장 이동과 함께 사무실로 축하 화분이 왔다. 화려한 장식에 새겨진 글씨는 `영전을 축하합니다. 주당클럽 일동`이었다. 동료 직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주당클럽` 이라니요?"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술이요, 술~"이라고. 얼마 후에 환영회식이 있었다. 차츰 분위기가 고조되고 몇 순배 술잔이 돌더니 이윽고 내게로 집중 권주가 이어졌다. 주당클럽의 명예를 과시한다고 만용을 부렸다. 다음날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 뒤로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술의 1인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술은 서로를 아끼고 정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과유불급이라고 좀 지나칠 때도 있었지만 마시는 속도만 잘 조정하면 스스럼없는 우정을 나누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었다. 봄이 오기 무섭게 주당클럽의 이벤트가 또 떴다. 청도 한재미나리 파티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들뜨게 했다. J가 발 빠르게 미나리를 공수해 왔다. 뒤이어 막내는 삼겹살을, 주당의 왕인 백합이 술을, 마무리의 끝판왕인 나는 2차를 책임지기로 했다. 부드럽고 향긋한 미나리향이 술 맛을 북돋웠다. 연신 부딪치는 잔에 술병은 늘어나고 푸짐하던 안주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한껏 도취된 기분을 노래로 풀어야 만이 미련 없이 끝 날 수 있기에 서둘러 노래방으로 향했다. "친구야, 우리 우정의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하자!" 흥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자정이 지나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열나흘 밤 달빛아래 벚나무 꽃망울이 하얗게 빛난다. 곧 흐드러질 꽃나무 아래 동동주잔 마주하고 나풀거리는 고운 잎 띄워 꽃술 마실 날을 또 잡는다. 주당클럽의 풍류를 눈치 챈 꽃들이 앞 다투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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